세계 경제가 경기침체 논란으로 요동치고 있다. 경기침체 우려가 나오면서 뉴욕증시는 패닉(공황)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뉴욕증시뿐 아니라 달러환율·국채금리·국제유가·금값, 구리 가격 그리고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암호 가상화폐도 경기침체 공포 속에 급등락을 오가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침체란 한마디로 경제가 급속하게 고꾸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는 기본적으로 사이클을 탄다. 경기 상승→호황→둔화→불황 등의 순환 곡선을 그리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경기 순환론이라고 한다. 경기가 단계적으로 변하면 경제 주체들로서는 변화에 대응할 충분한 여유를 갖게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급속한 변화다. 경제가 갑자기 과열로 끓어오르거나 급격하게 후퇴하면 충격이 올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패닉 발작이 올 수 있다.
금융시장은 경기의 급속한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야기되는 패닉 발작에 특히 취약하다. 최근 뉴욕증시와 코스피·코스닥 등이 발작 증세를 보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패닉 발작은 뉴욕증시·코스피·코스닥뿐 아니라 달러환율·국채금리·국제유가·금값, 구리 가격 그리고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암호 가상화폐까지 뿌리째 뒤흔들 수 있다.
급격한 경기침체를 경제학에서는 리세션(Recession)이라고 한다. 미국 뉴욕증시에서 말하는 'R의 공포'는 바로 이 리세션의 영어 Recession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최근 뉴욕증시 등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R의 공포'는 구매관리자지수(PMI) 발표로부터 촉발됐다.
PMI란 기업의 구매 담당자를 대상으로 신규 주문·생산·재고·출하 정도·지불 가격·고용 현황 등을 조사한 후 각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해 0~100의 수치로 나타낸 지수다. 일반적으로 PMI가 50 이상이면 경기의 확장, 50 미만이면 수축을 의미한다. PMI는 영어 Purchasing Managers' Index의 약자다. 기업의 생산 활동이 구매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그 구매를 담당하는 구매관리 책임자들의 체감경기는 산업 현장의 경기 상황을 가장 빠르게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는 바로미터일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PMI는 경기 판단의 자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PMI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신뢰도가 높은 것은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의 구매관리자지수다. 이번에 경기침체 소동을 촉발한 곳도 바로 미국 공급관리협회였다. ISM은 최근 2024년 7월 제조업 PMI를 46.8로 발표했다. 이는 전월 대비 1.7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2023년 11월 이래 8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이 지표가 발표되면서 뉴욕증시에 경기침체의 공포가 시작됐다. PMI에 이어 바로 발표된 노동부의 고용보고서도 경기침체 우려를 증폭시켰다. 실업률이 4.3%로 치솟으면서 'R의 공포'가 확산됐다.
고용보고서는 '삼(Sahm)의 법칙'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삼의 법칙'이란 2019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이코노미스트였던 클로디아 삼이 과거 경기침체와 실업률의 상관관계를 추적한 끝에 고안해낸 가설이다. 삼의 법칙에서는 미국 실업률의 최근 3개월 이동평균치가 앞선 12개월 중 기록했던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으면 경기침체(recession)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한다. 노동부 발표 고용보고서를 토대로 측정한 7월 실업률 격차는 0.53%포인트였다. 삼의 법칙의 경기침체선인 0.5%포인트를 넘어섰다. 바로 이 대목에서 경기침체 공포가 크게 증폭됐다. 삼의 법칙에서 경기침체 신호가 나왔다는 보도에 뉴욕증시는 크게 흔들렸다. 주말을 쉬고 다음 주 월요일 열린 일본증시와 코스피·코스닥 등은 그야말로 블랙 먼데이에 빠졌다. 여기에 엔비디아의 블랙웰 설계 결함까지 터지면서 기술주 투매가 벌어지기도 했다. 경기침체 우려는 한국 수출의 견인차인 반도체 업황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스마트폰과 PC 등의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인공지능(AI) 열풍도 식어가고 있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보유했던 애플 주식의 절반가량을 지난 2분기에 매각했다.
삼의 법칙이 뉴욕증시, 비트코인에 경기침체 폭탄을 몰고 온 셈이다. 삼의 법칙의 정식 명칭은 '삼의 법칙 침체 지표(Sahm rule recession indicator)'다. 미국 실업률을 기반으로 미국 경기가 침체에 들어섰는지 파악하는 데 활용되는 지표다. 삼의 법칙이 경제학계의 과학적 검증을 거친 신성불가침의 공리는 아니다.
삼의 법칙을 만든 경제학자 삼도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삼의 법칙은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의 초기 국면에 있는지 나타내는 하나의 참고 지표(indicator)일 뿐 경기침체를 진단하는 예측 도구(forecast)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삼 박사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삼의 법칙이 최근 몇 년간 일종의 경기침체 예측 지표로 주목받고 있는 것에 대해 당초 취지와 다르다고 거듭 해명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침체를 공식적으로 판가름하는 곳은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NBER)다. NBER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분기 연속 감소하면 경기후퇴로 정의한다. NBER은 침체라고 판단되면 홈페이지(nber.org)에서 경기침체를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미 국립경제연구소는 1920년에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 민간 연구조직이다. 미국 경제에 대한 연구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본거지를 두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 뉴욕시에 지사가 있다. 미국인 출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 절반 이상이 이 연구소와 관련된 사람들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싱크탱크인 셈이다.
NBER의 경기침체 진단은 매우 정확하지만 후행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예컨대 NBER이 코로나19 사태로 미국 경기가 2020년 4월 바닥을 쳤다고 공식 선언한 시점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2021년 7월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경기가 2007년 12월부터 정점을 찍고 침체가 시작됐다고 공식 선언한 시점은 2008년 12월이었다. 상황을 판단하는 데 1년 이상의 간극이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삼의 법칙은 침체 여부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 뉴욕증시에서 자주 거론된다. 경기침체 지표의 구성 요소와 공식조차 단순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삼의 법칙을 측정해볼 수 있다. 소비 지출 전문가로 손꼽혔던 그는 과거 부시 행정부, 오바마 행정부에서 경기부양, 광범위한 세액공제 정책 등에 관여하면서 ‘불황기에 좋은 경기부양책을 어떻게 시행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집중한 바 있다. 즉 침체가 시작되는 즉시 경기부양책을 시행하기 위한 기준으로 삼기 위해 이러한 지표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