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로 별세...수사반장 전원일기 한국인의 밥상 등 연기 여정 67년
푸근한 사랑과 영원한 아버지의 초상...조연 노역 마다 않는 '도전 인생'
푸근한 사랑과 영원한 아버지의 초상...조연 노역 마다 않는 '도전 인생'
이미지 확대보기최불암이 우리 곁을 떠났다. 전원일기가 남긴 온기는 우리 마음 속에 지울 수 없고 수사반장의 푸근함과 사랑은 오래 기억돼 마땅하다. 보리밥 푸성귀에도 겸상하고픈 한국인의 밥상에선 풍상 속에 선 마을 뒷산의 등이 굽은 청청한 소나무를 보았다.
최불암이 영면에 들었다. 시대를 울렸다는 연기 67년은 그의 길이었지만 한국인의 노정이었고 아버지들의 소리없는 울음이었다. 그 울음은 이제 오열이 돼 전국은 그를 추모한다.
대한민국 방송·문화예술계에 거대한 자취를 남긴 ‘국민 아버지’이자 ‘영원한 수사반장’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유족과 방송계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 이후 거동이 불편해져 14년간 자리를 지켰던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 하차한 뒤 재활에 매진해왔다. 그러나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29일 밤 10시께 끝내 눈을 감았다.
평생 따뜻한 웃음과 묵직한 울림으로 시청자들의 곁을 지켰던 그의 비보에 각계각층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뚝심의 67년 연기 여정… ‘박 반장’에서 ‘김 회장’까지 시대를 울리다
1939년 인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연출가를 꿈꾸며 극단 ‘실험극회’의 연극 ‘햄릿’(1959)으로 데뷔했다. 이어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정식 합류하며 무대에서 탄탄한 내공을 쌓았다.
1967년 KBS 특채 탤런트로 발탁된 뒤 20대의 나이에 드라마 ‘수양대군’에서 노년의 김종서 역을 완벽히 소화해내며 천생 배우의 기질을 드러냈다.
그의 이름 앞에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은 결정적 계기는 한국형 수사물의 시초인 MBC ‘수사반장’(1971~1989)의 박영한 반장, 그리고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의 양촌리 김 회장이었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조연과 노역을 마다치 않았던 그는 40대 나이에 ‘제1공화국’ 등에서 80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연기하는 등 파격적인 도전도 서슴지 않았다. 67년의 세월 동안 스크린과 브라운관, 연극 무대를 아우르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묵직한 아버지의 초상을 완성해냈다.
이미지 확대보기밥상머리에서 건넨 위로와 나눔… ‘한국인의 밥상’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소박한 밥상 속에 담긴 삶의 연륜과 어머니들의 지혜를 차분한 목소리로 전하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무대 밖에서의 삶 또한 약자들을 향한 헌신으로 가득했다. ‘전원일기’ 촬영 중 마주한 아동의 모습에 깊은 책임감을 느낀 그는 40년 이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 회장직을 맡아 소외된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을 위해 앞장섰다.
이러한 평생의 뜻을 기려 고인의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엄수되며,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이수성·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해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소탈한 웃음 뒤에 남긴 커다란 울림, 영원히 기억될 이름
고개를 젖히고 호탕하게 웃던 ‘파하~’라는 웃음소리는 세대를 초월해 대한민국 전체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어머니가 명동에서 운영하던 예술가들의 사랑방 ‘은성’ 주점에서 단골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던 따뜻한 품성을 보고 자란 덕에, 그가 연기한 모든 인물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중이 깃들어 있었다.
정계에 잠시 발을 들여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으나, 결국 천생 배우의 자리로 돌아와 평생을 예술과 나눔에 헌신한 최불암. 비록 그의 육성은 멈췄지만, 그가 남긴 훈훈한 밥상의 온기와 영원한 반장의 정의로운 눈빛은 우리 가슴속에 오래도록 살아 숨 쉴 것이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유족으로는 아내인 배우 김민자와 아들 동녘, 딸 동비 씨가 슬픔 속에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엄정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astoday@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