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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연준 FOMC 기준금리 동결과 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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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드는 가운데 나온 결정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동결이 경제 논리보다 정치 일정을 따른 선택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11월 3일 중간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금리를 올리면, 물가를 잡지 못한 트럼프 정부의 실정이 유권자 앞에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준은 정치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결정의 시점이 스스로 의심을 불렀다.
최근 물가 지표를 보면 그 의심은 더 짙어진다. 지난 14일 발표된 9월 소비자물가는 전월 대비 0.6%, 전년 동월 대비 3.7% 올랐다. 근원물가 상승률도 2.4%에서 2.6%로 높아졌다. 이란 전쟁 이후 치솟은 국제유가가 에너지에서 출발해 물가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신호다. 연준 스스로도 지난 6월 올해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전망을 2.7%에서 3.6%로 대폭 올려 잡았다. 2%라는 목표는 이미 몇 해째 닿지 못한 숫자가 되었다.

연준은 지난 9월 2023년 이후 처음으로 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그렇다면 물가 상승 폭이 오히려 커진 지금 한 번 더 움직이는 것이 일관된 대응이다.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를 지낸 로레타 메스터도 경제 논리로는 인상을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선거만 아니었다면 이번에 인상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동결이 연준의 물가 대응 의지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지금의 물가는 유가라는 공급 충격에서 비롯된 만큼 금리로 다스리기 어렵고, 9월 신규 고용이 2만9000명에 그칠 만큼 노동시장도 식고 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공급 충격이 기대인플레이션에 옮겨붙는 순간 문제의 성격은 달라진다. 더구나 통화정책에서 몇 주의 시차보다 중요한 것은 결정이 무엇에 의해 내려졌느냐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다. 금리를 올리지 못한 이유가 선거라고 시장이 믿는 순간, 연준의 말은 무게를 잃는다.
맥락도 우려를 키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이후 줄곧 금리 인하를 압박했고, 파월 전 의장에 대한 형사 수사와 리사 쿡 이사 해임 시도까지 이어졌다. 그가 임명한 케빈 워시 의장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공언하고도 선거 직전 손을 놓은 모양새가 되었으니,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는 이런 장면의 결말을 이미 보여주었다. 1972년 재선을 앞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아서 번스 연준 의장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풀라고 요구했다. 백악관 녹음테이프에는 그 압박이 생생히 남아 있다. 번스는 결국 이에 응했고 닉슨은 압승했다. 그러나 대가는 혹독했다. 미국 물가 상승률은 1974년 10%를 넘었고 1980년에는 14%대까지 치솟았다. 이른바 ‘대인플레이션’이다.

그 불을 끈 사람은 폴 볼커였다. 1979년 취임한 그는 기준금리를 20% 가까이 끌어올렸다. 실업이 급증하고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연준 앞으로 몰려들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고통을 딛고 미국은 이후 20여 년간 낮은 물가와 안정적 성장을 누렸다. 정치에 휘둘린 몇 년의 값을 치르는 데 한 세대의 고통이 필요했던 셈이다.

가까운 사례도 있다.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물가를 올린다는 독특한 논리로 중앙은행을 압박하며 말을 듣지 않는 총재를 잇따라 갈아치웠다. 물가가 뛰는 와중에 금리를 내린 결과 2022년 물가 상승률은 85%를 넘어섰고 리라화는 폭락했다. 정부는 뒤늦게 금리를 대폭 올리며 정책을 뒤집어야 했다.
교훈은 분명하다. 정치는 선거라는 짧은 주기로 움직이지만 통화정책의 효과는 긴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금리 결정을 정치에 맡기면 당장의 표를 위해 미래의 물가를 저당 잡히려는 유혹을 피하기 어렵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중앙은행을 위한 특권이 아니라 그 유혹으로부터 국민의 화폐 가치를 지키는 장치다.

독립성은 법조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시장이 이 기관은 정치 일정과 무관하게 판단한다고 믿을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한 번의 동결이 곧바로 위기를 부르지는 않겠지만 신뢰는 그렇게 조금씩 깎여 나간다. 12월 회의에서 연준이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이번 동결의 성격을 판가름할 것이다. 세계 최강의 중앙은행마저 흔들리는 지금, 선거 때마다 금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우리 역시 중앙은행 독립성의 의미를 다시 새겨야 할 때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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