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경 '선택-뜨거운 죽음' : 회화적 조형이 찬란한 서사로의 집중을 유도한다. 사랑과 운명의 시작, 삶과 죽음의 교차가 이루어진다. 푸른 대지 위, 싱그러운 물 내음과 한낮의 햇살 속에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이 꽃피지만, 운명의 화살은 이미 날아들었다. 찬란한 사랑과 동시에 운명의 불가항력적 긴장감이 인다. 생명의 찬란함과 소멸의 그림자가 오가는 순간, 선택의 수레바퀴가 굴러간다. 생명의 감각, 감각적 세계를 통해 존재의 찬란함을 보여준다.
감각의 절정이 죽음의 서막이 된다. 이러한 감각적 대비는 무용의 질감으로 표현된다. 물결 같은 부드러운 움직임이 갑작스레 멈추거나 여인이 베일처럼 천천히 가라앉는 행위는 ‘죽음이 침투하는 생의 순간’을 미학적으로 시각화한다.
2경 '애도–사랑의 길' : 오르페우스가 리라(소리, 최수정)를 타고 하데스(저승, 김민정)로 가는 설정은 내면 여행, 공간과 상징은 하데스의 무대적 은유이다. 그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향한 강한 의지로 견고한 케르베로스를 지난다.
이어 레테의 뱃사공을 설득한뒤 탄탈로스, 익시온, 시지프스의 형벌을 중단하고 복수의 뮤즈들의 도움으로 하데스 앞에 선다. 음악과 예술이 인간의 고통과 형벌을 잠시 정지시킬 수 있다는 예술 구원력을 보인다. 무대는 어둠 속으로 내려가며, 내면의 심연을 시각화한다. 하데스는 무의식의 심연, 사랑의 본질을 시험하는 내면의 공간이다. 오르페우스의 리라와 몸짓이 음악과 예술의 힘을 상징, 극적 긴장을 만들어내며 인간적 고통과 지옥적 현실을 시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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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3경 '기회–사랑을 한다는 것' : 사랑의 증명, 순간적 낙원의 환희가 펼쳐진다. 오르페우스는 온몸으로 노래와 춤으로 에우리디케를 향한 사랑을 하데스에게 증명한다. 오르페우스의 팔과 몸의 선, 호흡과 회전, 순간순간의 정지와 점프는 사랑의 힘을 시각적 언어로 번역한다. 열정적 사랑, 절박한 구애는 많은 수사가 필요 없다. 사랑의 감정을 몸과 음악으로 극대화. 낙원과 불꽃 같은 감정을 시청각적으로 표현, 하데스는 절대적 권위 속에서도 사랑의 힘이 관통한다.
이 장면은 몸과 음악, 공간과 빛을 통해 극대화한 미학적 체험으로 기능한다. 이 장면에서 안무가는 음악과 움직임의 합일을 탁월하게 이끈다. 동작은 선율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공간을 가르고 리듬을 발생시키며 음악이 몸에 의해 다시 생성되는 구조를 취한다. 관객은 ‘춤이 노래를 만들고, 노래가 다시 춤을 일으키는’ 존재와 부재, 생과 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 예술적 생성의 순간으로 확장된 신화적 원환성을 체험한다.
4경 '애도Ⅱ–믿음과 의심' : 인간적 의심과 믿음, 반복과 굴레, 존재론적 긴장을 압축한다. 연인은 끝없는 굴레와 어둠 속을 걸으며 사랑의 본질과 인간적 의심을 질문한다. 무대에는 정지와 동작, 빛과 그림자가 대비되며, ‘뒤돌아봄’의 순간은 시간과 리듬의 미학을 실현한다. 이 행위는 작품의 정점이자 시간의 방향을 전복시키는 순간이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의 전율, 한 걸음의 회전, 한 번의 고개 돌림이 우주적 변화를 촉발하는 존재론적 사건이 된다.
이 장면은 무용이라는 신체 언어를 통해 인간의 의심과 믿음, 사랑의 본질적 윤리를 미학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철학적 순간이다. ‘믿는다는 것'은 '의심한다는 것'이 아닐는지. 오르페우스와 군무 사이의 거리 조절은 압권이다. 가까움과 멀어짐, 이끌림과 밀어냄, 미세한 발목 꺾임과 어깨선의 낮춤 등 감정의 진폭이 신체의 미세한 조율로 번역된다. 이 섬세한 안무 언어는 김진미가 지닌 ‘감정의 기하학’을 명확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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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5경 '선택Ⅱ–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 : 사랑과 예술의 구원, 반복 속 희망, 애도와 위로가 이루어진다. 결말부의 움직임은 절제 속에서 격렬한 내적 진동을 품는다. 반복되는 동작은 미세한 차이를 띠며 시간의 층을 쌓고, 느린 시선의 각도 변화와 축 중심의 흔들림, 바닥을 스치는 발끝의 잔향이 ‘남겨진 존재’의 숨결을 오래 머물게 한다. 이 고요한 누적은 마침내 폭발이 아닌 ‘영혼의 떠남을 배웅하는’ 상승의 카타르시스로 이어진다.
지전무가 혼을 달래고 길을 내어주듯, 이 장면의 춤은 말 없는 기도와 같이 사랑과 애도의 순환을 열어젖힌다. 김진미 안무의 절제된 절창은 인간의 마지막 움직임이 ‘떠남을 지키는 춤, 남겨짐을 견디는 춤’임을 깊은 진동으로 새긴다. 벗어날 수 없는 반복과 굴레 속에서도,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남아 끝없는 위로의 선율이 된다.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을 수용하는 것, 에우리디케의 눈빛은 허공을 헤매며, 사랑과 예술,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성찰한다.
비극 속 구원의 순간, 소리(리라의 선율)는 예술의 구원으로 이어진다. 작품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예술이 인간의 반복된 비극을 초월하는 통로임을 밝힌다. 반복과 비극을 받아들이는 인간은 오르페우스의 노래와 몸짓 속에서 구원과 위로로 전환된다, 작품은 사랑과 예술이 인간적 비극을 초월하는 미학적·철학적 통로임을 우아하게 선언한다. 이때 무대는 더 이상 서사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이 예술로 승화되는 ‘구원의 장(場)’으로 변모한다.
결말부의 움직임은 절제 속에 격렬한 내적 진동을 품는다. 반복 동작은 미세한 차이로 시간의 결을 쌓고, 느린 시선과 흔들림, 바닥을 스치는 발끝의 잔향이 ‘남겨진 존재’의 숨결을 오래 남긴다. 이 고요한 누적은 ‘영혼의 떠남을 배웅하는’ 상승의 카타르시스로 이어진다. 지전무가 혼을 달래듯, 이 장면의 춤은 말 없는 기도로서 사랑과 애도의 순환을 연다. 김진미 안무의 절제 절창은 인간의 마지막 움직임 ‘떠남을 지키고 남겨짐을 견디는 춤’으로 깊이 각인된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제공=강원특별자치도립무용단(촬영 김세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