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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귀호 총연출·안무의 창작무용 '하루: 레종데트르', 푸르름을 향해 떠나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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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귀호 총연출·안무의 '하루: 레종데트르'
하루에 물을 대고 종이배를 띄운다/ 투명한 유년이 피어오른다/ 원색 항해에 녹색이 앞장서 달려온다/ 삶을 흘러가면서/ 배는 다양한 풍경과 만난다/ 거친 세상을 부대기면서/ 묵직한 침묵은 무기가 된다/ 바람 부는 날에도 배는 오후를 넘는다/ 삶이 힘들고 마음이 흔들릴 때면/ 초록 눈부신 동심을 향해 담박질하는/ 나를 마주한다/ 아직/ 그곳 강 같은 바다에는/ 작은 일렁임을 낚는 시인들이 서성이겠지/ 나는 순수의 제단에서 여린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10월 4일(토) 일곱 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이음 댄스프로젝트(예술감독 안병주 경희대 교수) 주최·제작, 서울특별시·서울문화재단 후원, 안귀호(경희대 글로벌미래교육원 무용학과정 총괄주임교수) 안무의 '하루: 레종데트르'가 공연되었다. 일상의 레종데트르(Raison d'être, 존재의 이유)는 마음의 돛단배를 불러 쪽빛 바다로의 길을 나아가기 시작한다. 소녀는 종이배를 어루만지며 하루를 위한 항해가 시작됨을 알린다. 종이배는 소녀의 삶의 여정을 암시한다.

소녀는 ‘종가(宗家)의 안무가’ 안귀호와 오버랩된다. 예술감독 안병주(경희대 무용학부 학부장)는 춤에 두루 능통하고 시(詩)가 된 안귀호의 춤을 조심스럽게 조망한다. “그녀의 춤은 생의 어둠을 건너는 하나의 기도와 같다. 맨발로 새긴 고통의 흔적은 이제 바다의 숨결과 맞닿아 찬란한 파동이 되었다. 별빛을 바라보며 속삭인 감사는 춤의 언어가 되어, 이 무대 위 다시 꽃처럼 피어난다. 나는 오늘, 그 항해의 한가운데서 그녀와 같은 배에 몸을 싣는다.”

소녀의 인생을 하루에 비유한 성찰은 안무가가 추구하는 예술 철학과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하루는 인생처럼 시작과 끝이 분명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감정과 변화, 활동이 일어난다. 안무가의 ‘움직임의 서사’는 짜인 스토리를 넘어 반복적이고 심오한 시적 수사로 가득하다. 다양하게 창출된 회화적 이미지는 단순한 움직임으로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안무가 안귀호가 하루를 채워나가는 방식은 희망을 성취해 가는 삶에 대한 예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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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귀호 총연출·안무의 '하루: 레종데트르'

여명(黎明), 어두울수록 작은 눈망울은 강력한 희망이 된다. 소녀는 파란 종이배를 나무처럼 내세우고 하늘을 닮고자 한다. 여리고 미세한 빛이 만드는 여명은 살아온 날에 대한 응원이며 가야 할 낯설고 험한 길에 대한 어미의 마음을 닮아있다. 순리는 여명이 사라짐으로 희망으로 번지고 무명을 밝히는 순항이 된다. 소녀는 블루와 골드 사이에서 희망을 주조하고 어둠 속에서 여명을 기다려온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청춘으로 커가는 존재의 이유였다.

이른 아침(早春), 아침이 열리며 가능성의 순간이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안무가 안귀호는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장면별 주(主) 감정 중심으로 몰입을 주문하며 감정적 소통에 집중한다. 안무가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와 표현을 연구하며, 실험을 반복하고 가능성을 열어간다. 안무가에게 창작의 시작 같은 아침은 희망과 도전의 순간이다. 자연스러운 극 흐름은 대중 친화적이다. 장면마다 감정과 내용이 명확하다. 미학적 구성이 안무의 궁극적 목표임이 밝혀진다.

낮(晩春), 땀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가장 활발한 시절의 공연은 낮처럼 다채롭다. ‘충실함’과 ‘집중’을 요구하는 그녀의 안무는 복잡한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내어 감정을 공유한다. 다양한 움직임을 수용하는 안무 스타일이 진열된다. 무용수들과 심도 있는 대화는 감정의 공유를 낳는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움직임이 안무가의 개성과 감각으로 재단되고 정제된다. 그 움직임은 그 안에 내재한 메시지를 담는다. 단 한 구간도 의미 없이 존재하는 장면은 없다.

저녁(初秋), 안무가는 하루가 저물면 자신의 노력과 에너지를 되돌아본다. 자신이 표현한 무언가가 어떻게 관객과 소통했는지를 성찰한다. 작품에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 세상에 대한 시각이 담겨 있다. 저녁은 그러한 감정을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안무가는 대한민국무용대상 출품 당시부터 장면에 따른 구체적인 이미지와 감정의 방향성을 구상해 왔다. 이번 공연으로 초연의 미진을 털어내었다. 이미지 구축은 철저히 자기 감각과 미적 직관에 따랐다.

밤(사유의 시간, 휴식), 정신적인 재충전과 새로운 영감을 얻는 시간이다. 밤은 그의 내면에서 자아와 예술에 대한 고독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다음 작품을 위한 내면의 에너지를 축적하며, 다시 아침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협업과 창작에 걸쳐 모든 스태프는 각자의 예술적 분야에서 뛰어난 예술적 역량을 발휘하며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다. 동굴도 별도 바다도 그들이 예술감독과 함께 세밀하게 협업해 안무가가 추구하는 삶을 동화적 감성으로 시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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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하루에 비유하여 성찰하는 작업은 안무가의 예술적 행보와 맞닿아 있다. 하루라는 시간은 그가 예술을 통해 삶을 어떻게 채워가고, 어떻게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메타포이다. 안병주 교수는 덧붙인다. “그녀의 하루가 곧 우리의 하루가 되고, 우리의 여정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힘으로 나아간다. 이제 바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동행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미지의 항로가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다시 걸어 나갈 힘을 발견한다.”

'하루: 레종데트르'는 평안남도 무형유산 ‘김백봉부채춤’ 이수자 안귀호의 전통과 창작에서 추출한 노련한 안무력을 보여준다. 한국무용 전공자 가운데 안귀호처럼 전통과 창작을 오가며 현대성, 균형감각, 비평적 안목을 소지한 안무가는 많지 않다. 안무가 안귀호는 자신의 삶을 회상하면서 균형감을 갖춘 ‘하루’를 아침처럼 완성했다. 그녀가 보여준 지난 삶과 오늘의 이야기는 이분법적 시대의 한계를 넘어 소중한 움직임의 언어로 무용사에 등재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기록=잔나비와 묘한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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