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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매각 차질] EU·美·日 반발에 아시아나 매각 무산 위기...한화오션 수순 밟나

옛 대우조선에 이어 또 EU 장벽에 무산 위기
조선업 빅2·항공업 빅1 개편…애초에 무리수 지적도
김포공항에 계류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모습.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김포공항에 계류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모습. 사진=연합뉴스

유럽연합(EU), 미국, 일본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에 몽니를 부리면서 ‘플랜B’로 매각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U 경쟁당국(집행위원회)이 다음 달 기업결합심사를 앞두고 슬롯(시간당 이착륙 허용 횟수) 조정과 화물 노선 분배 등 독점적 점유율을 낮추는 방안을 요구하면서, 통합 대한항공의 국내외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어서다.

산업은행이 경쟁당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아시아나항공 화물 부문을 팔아야 해 당초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하고 시너지를 높이겠다는 청사진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사실상 아시아나항공을 해체해 매각할 경우 ‘1국가-1항공사’의 경쟁력 강화 방안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HD현대그룹(옛 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조선업 '빅딜'이 EU 규제당국에 의해 좌초된 데 이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도 비슷한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초 국익을 명분으로 한국 조선업과 항공업을 각각 '빅2', '빅1' 체제로 개편한다는 복안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합병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3년 이상의 세월과 혈세만 낭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3일 정부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3년가량 표류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에 최악의 선택지가 남겨지고 있어 ‘플랜B’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산은은 공식적으로 합병 무산 전에는 플랜B가 없다고 하지만, 내부적으론 이미 플랜B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산은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는 기업 인수합병(M&A) 특성상 플랜B가 없을 수는 없다"면서 "이미 내부적으로 플랜B를 준비하고 있어도 플랜A가 완전히 좌절되기 전까지는 밝힐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회사는 EU와 미국, 일본 등 경쟁당국의 동의를 끌어내야 하지만 EU 경쟁당국이 지난 8월 3일로 예정됐던 심사 종료 기한을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10월 초로 미루면서 기업결합 막바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한항공은 현재 EU 경쟁당국을 설득하기 위해 슬롯 조정과 화물 노선 분배 등 독점적 점유율을 낮추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외 경쟁당국이 항공화물 시장에서 대한항공의 지배력 강화를 우려하고 있는 탓이다.

이에 따라 애초에 이동걸 전 산은 회장이 무리하게 동종업계 간 기업결합을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한화오션 매각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화오션이 HD현대그룹에 매각이 불발된 이후 한화그룹에 매각이 결정된 지 8개월 만에 국내외 경쟁당국의 승인을 거쳐 매각이 손쉽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EU 경쟁당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산은의 아시아나항공 매각 명분도 약해질 수 있다.

산은이 두 대형 국적항공사의 통합을 발표했을 당시 내건 주된 명분은 글로벌 초대형 항공사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1국가-1대형항공사(FSC) 체제'가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항공산업의 근간이 흔들렸던 때라 두 항공사의 합병은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항공산업이 정상화되는 상황에서 복기해 보면 산은이 합병을 안일하게 판단했다는 비판론이 제기된다. 산은은 미국, 중국, 일본,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가 ‘1국가-1항공사’ 체제이기 때문에 해외 기업결합심사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난해 1월 EU 경쟁당국의 반대로 HD현대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 불발이 확정된 이후 당시 이동걸 산은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아나항공도 비슷한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결합 건은 명확한 차이가 있다"면서 "EU가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이 EU 등 경쟁당국들의 기업결합심사 문턱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이 무산되면 이를 전제로 한진칼 지분을 보유했던 산은의 명분이 약해진다. 산은은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지주사 한진칼에 8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유상증자 5000억원, 교환사채 3000억원이다. 산은은 해당 투자로 한진칼 지분 10.58%를 가지며 주주로 올라섰다. 산은이 조원태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작용하면서 당시 사모펀드(PE) 등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되면 그간 우호지분으로 작용했던 산은 보유지분이 시장에 풀리고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수 있는 셈이다. 결국 한진그룹과 조원태 회장 입장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딜을 성공시켜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합병을 주도한 산은은 난감한 처지에 몰렸다. 대한항공은 어떻게든 아시아나항공을 품에 안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산은 입장에서는 기업결합심사를 위해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을 훼손시키는 것은 당초 합병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EU가 공식적인 결론을 내지 않았기에 산은은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선 한화그룹 등이 새 인수후보로 등판할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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