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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파란만장 99년 인생史"…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19일 건강 악화로 별세

'껌' 하나로 시작해 '재계 5위'까지 성장
아들들의 '경영권 분쟁' 등 씁쓸한 말년 보내

황재용 기자

기사입력 : 2020-01-1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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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사진=뉴시스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한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4시30분께 별세했다. 맨손으로 '껌 사업'을 시작해 롯데를 국내 재계 5위로 이끈 '거인' 신 명예회장의 파란만장한 99년 인생사(史)가 끝을 맺었다.

롯데그룹과 재계 등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그동안 건강이 나빠지면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지난달 18일 치료 목적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으며 지난 18일 밤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에 가족들과 그룹 주요 임원직들은 만일에 대비해 병원에 모였다. 일본 출장 중이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급히 귀국했다. 결국 신 명예회장은 19일 오후 운명했다.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우리나라 재계를 이끌던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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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명예회장은 '껌' 하나로 시작해 한국과 일본에서 대기업을 일궈낸 기업가다. 사진=뉴시스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등에 걸쳐 대기업을 일궈낸 우리나라 대표 기업가다. 그의 삶은 99세라는 나이 만큼이나 파란만장했다.

신 명예회장은 1922년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1941년 만 19세 나이에 사촌형이 마련해준 여비를 갖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과 우유 배달을 하던 중 일본인 사업가 하나미쓰가 신 명예회장에게 5만 엔을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신 명예회장은 이 돈으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4년 도쿄 근교에 윤활유 공장을 세웠지만 미군의 폭격으로 공장이 불타 5만 엔의 빚을 지게 됐다. 일본 패전 후 귀국을 하지 않은 그는 다시 우유 배달을 하고 공사장에서 일하며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사업자금을 준비한 신 명예회장은 1946년 도쿄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라는 공장을 짓고 비누 등을 만들며 빚을 갚아 나갔다. 1년 반 만에 빚을 다 갚은 그는 1948년 제과회사 롯데를 설립, 미군이 주둔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껌 사업을 시작했다.

껌이 잘 팔리며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신 명예회장은 자본금 100만 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만들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 이름인 '롯데'를 따 회사 간판을 내걸었다. 이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전세계 20개 국가에서 74개 계열사를 거느린 롯데그룹의 첫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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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명예회장은 껌으로 번 돈으로 초콜릿 사업을 시작했다. '제과업계의 중공업'으로 불릴 만큼 까다로운 초콜릿 제조를 위해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진과 시설을 들여와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한 그는 캔디·비스킷·아이스크림·청량음료 등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롯데를 종합 식품회사로 키웠다.

일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알리던 신 명예회장은 1967년 한일 수교로 한국 투자의 길이 열리자 국내에 롯데제과를 설립해 한국에서의 롯데를 만들어 나갔다. 1974년 칠성한미음료를 인수해 롯데칠성음료를, 1977년 삼강산업을 사들여 롯데삼강을 각각 세우면서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1973년에는 롯데호텔을 열어 관광사업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1979년에는 롯데쇼핑을 설립해 유통 현대화의 토대를 구축했다. 이후 1978년 평화건업사(현 롯데건설)를, 이듬해에는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을 인수해 건설과 석유화학 산업에도 진출했다. 식품과 관광을 넘어 건설과 화학 등의 진용을 갖춘 신 총괄회장의 롯데는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거치며 고공성장을 지속했다.

특히 롯데호텔은 1988년에 소공동 신관과 잠실 롯데호텔을 열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일조했다. 세계 최대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롯데월드의 경우 관광 인프라에 대한 신 총괄회장의 소신과 열정이 빚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 총괄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해 관광대국을 꿈꾸며 롯데호텔과 롯데월드, 롯데면세점 등 관광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으며 1990년대에는 편의점(코리아세븐), 정보기술(롯데정보통신), 할인점(롯데마트), 영화(롯데시네마)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부회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회사 경영에 들어간 후 신 총괄회장은 여전히 주요 사업을 챙겼다. 온라인쇼핑(롯데닷컴 설립)·SSM(롯데슈퍼)·카드(동양카드 인수)·홈쇼핑(우리 홈쇼핑 인수)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롯데그룹을 재계 서열 5위에 올려놓았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과 한국에서 거침없는 행보로 1990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9위에 오르기도 했다. 여기에 관광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린 점을 높이 평가받아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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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사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신격호 명예회장은 아들들의 경영권 분쟁으로 씁쓸한 말년을 보냈다. 사진=뉴시스


다만 신 명예회장은 그의 업적과 달리 씁쓸한 말년을 보냈다. 2015년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국내 주요 계열사 이사직에서도 퇴임하면서 롯데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특히 정신건강에 문제가 드러나면서 법원이 정상적인 사무처리 능력이 없다며 사단법인 선을 신 명예회장의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으로 지정했다.

신 명예회장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와 딸 신유미씨 등이 있다. 여기에 신춘호 농심 회장, 신경숙씨, 신선호 산사스 사장, 신정숙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 등 그의 동생들이 있다.


황재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soul3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