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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올 추석 마을어귀에서 우물을 만난다면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기사입력 : 2018-09-2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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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일 포스티노(94작,마이클 래드포드 감독)는 섬에 사는 한 가난한 배달부가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영화다. 무기력했던 그가 인간에 대한 존경과 연인에 대한 사랑을 얻고 사상적 가치마저 깨닫게 된 동력은 시가 지닌 은유적 세계다. 그는 칠레의 망명 시인 네루다를 만나 비가 내리는 소리가 하늘이 우는 소리도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바다가 “배가 단어들 사이에서 퉁퉁 튕겨지는 느낌”이라고,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가 “나비의 날개처럼 얼굴 위에 펼쳐지는” 모습이라고 그려낸다. 그에게 또 하나의 다른 세상이 열린 것이다. 우리들 눈에 보이는 세상의 반대편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엊그제 뜨거운 여름을 털어내려 마포대교를 걸었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대관령 양떼목장 같은 하늘을 만나 그 청명함과 상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바로 이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비유와 은유는 탄생한다. 어느 후배가 “이마로 대못을 박는 심정”으로 새 출발한다고 표현했을 때 난 그의 흉중을 읽을 수 있었다. 인간이 가진 은유와 비유의 최고 형태는 시다.

시는 운율을 위한 축약을 그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형태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작가의 의도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문맥 파악이 쉽지 않아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몇 번의 숙독을 거치고 상상력을 동원하면 감정이입과 해석이 가능하다. 강은교 시인의 <물이 내는 소리>라는 시를 보자.

“그렇군, 물소리는 물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 물이 바위를 넘어가는 소리, 물이 바람에 저항하는 소리, 물이 바삐바삐 은빛 달을 앉히는 소리, 물이 은빛 별의 허리를 쓰다듬는 소리, 물이 소나무의 뿌리를 매만지는 소리… 물이 햇살을 핥는 소리, 핥아대며 반짝이는 소리, 물이 길을 찾아가는 소리… 가만히 눈을 감고 귀에 손을 대고 있으면 들린다. 물끼리 몸을 부비는 소리가. 물끼리 가슴을 흔들며 비비는 소리가. 몸이 젖는 것도 모르고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비늘 비비는 소리가… 심장에서 심장으로 길을 이루어 흐르는 소리가.”

시인은 물의 소리를 촉감으로 표현했다. 그리곤 사람도 혼자 살 수 없듯이 물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돌, 바위, 바람, 달, 별, 소나무, 햇살, 길, 몸, 가슴, 물고기, 심장… 흐르는 물이 내는 소리는 저 혼자 내는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와 만나고 부딪혀 내는 소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읽다 보면 내용이 이해되는 경우다.

한편 작가의 속내를 좀 더 들여다봐야 이해가 되는 시가 있다. 작가가 살아온 시대나 그가 처한 상황을 알아야 해석이 가능한 경우다. 그래야 문맥이 이어지고 맥락이 나타난다.

김종삼시인의 “북치는 소년” 을 보자.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서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작가의 의도를 이해 할 수 있는가? 문학적 아름다움이 느껴지는가? 그를 알고 그 시대를 알고 이어보면 이렇다. <가난한 나라의 거리에 서양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진다. 시인은 쇼윈도에서 부자나라에서 온 크리스마스카드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는 그의 땅에 사는 아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카드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카드의 그림은 아름답지만 가난한 나라의 아이에겐 아무런 의미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상이한 개념에서 유사성을 발견한다. 유사성을 발견하기 위해선 사물과 사태의 추이를 깊게 들여다보고 배경과 근원까지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는 여기에 좋은 자양분이 된다. 시속의 문맥과 맥락의 변화를 감지해내는 훈련을 통해 세상 반대편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함을 알게 될 것이다. 가령 올 추석 고향 가는 길, 마을 어귀 외딴 우물이라도 문득 만난다면, 그래서 윤동주의 <자화상>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세파에 시달려 상처투성이인 당신과 만날 테니 우물가에 앉아 한 동안만이라도 그를 잘 보듬어 주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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