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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왕(湯王)이 세운 상나라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94)]

김경상 사진작가

기사입력 : 2017-06-1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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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商, 기원전 1600년경~기원전 1046년경)나라는 역사적으로 실제로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최초의 중국 왕조다.

반경(盤庚)이 옮긴 마지막 도읍이 은(殷)이기 때문에, 은나라라고도 부른다. 상나라의 시조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데, 기록에 의하면 전설상의 인물인 황제(黃帝)의 후손 탕왕(湯王)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탕왕은 하나라의 마지막 왕이자 폭군인 걸왕을 무찌르고 상나라를 개국하였다. 마지막 왕은 무희 달기와 함께 국민을 잔혹하게 다룬 30대 주왕(紂王)이며, 주(周)나라 시조인 서주 무왕(西周 武王)에 의해 멸망하였다.

19세기 말까지 전설상의 왕조로만 다루었으나 20세기 초에 은허(殷墟)가 발굴되고 고고학적 증거들이 나타나 실재하는 왕조였음이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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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안구에서 출토된 주나라 청동칼, 산동박물관

출토된 청동기나, 갑골문자(甲骨文字)를 독해함으로써 선사 사회부터 역사시대로 옮겨진 은나라 사회의 실태가 해명되기에 이르렀다. 은대의 국가는 왕이 거주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그 주위에는 농업생활을 영위하는 여러 촌락이 전개되어 있었으며, 왕이나 귀족은 농민을 지배하여 곡물을 조세로 징수해서 일족(一族) 및 예속되어 있는 가내노예나 각종 기술자들을 부양했다.

농민은 하나의 대가족 집단이 하나의 마을을 구성하고 마을의 경작지에서 영농을 하고 있었다. 이 혈연 촌락은 족장의 통솔 밑에 어느 정도의 자위조직(自衛組織)도 가지고 공동작업에 종사하여, 자율적인 생활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지배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농민을 장악하기보다는 족장들을 장악하고, 족장들을 통해서 촌락을 지배했다.

은나라 시대의 정치는 신권정치로서 제사·정벌·권농·목축 등 주요한 국사는 신의 뜻을 묻는 점(占)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사회는 부권적(父權的) 씨족제로서 처음은 형제 상속이었으나 곧 부자상속으로 되었다.

귀족은 더없이 정교한 청동기·백도(白陶)·옥기(玉器)를 사용하고 있었다. 농민은 목제 농기구나 석제 농기구를 사용하여 보리·수수·기장 등을 재배하고, 양잠을 하였으며, 말·양·돼지·소 등을 사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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