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0일 군 장성 진급·보급 신고 및 수치수여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장의 필요로 의해 만드는 항공모함이 아닌 대한민국 해군이 꿈꾸는 미래형 항공모함을 설계해 사업을 진행하자는 의미로 해석됐다.
대한민국 해군의 마지막 꿈으로 불리는 항공모함 사업은 오랜 시간 동안 논의에 논의를 거쳐 왔다. 긴 시간동안 대부분의 계획이 논의되다 무산됐고, 다시 논의를 거쳐 왔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탁상공론을 넘어 지난해 72억원의 예산이 배정된 것이다.
예산배정과 함께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자 해군과 방산업계, 그리고 조선업체들은 벌써부터 차세대 항공모함 설계를 선보이며 의욕 넘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항공모함의 규모를 몇만톤(t)으로 할지, 무장체계와 추진체계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함재기의 선택 등 중요한 의제들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25년 동안 무르익은 항모의 꿈
대한민국이 항공모함 보유에 대해 진지한 고민에 나선 것은 상당히 오래됐다. 이중에서도 공식적으로 정부가 항공모함 도입을 고려한 것은 1996년 4월 김영삼 정부 때였다. 당시 안병태 해군참모총장에게 김영삼 대통령이 항공모함 보유를 재가한 것이 최초의 논의다.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안 총장에게 "40여기의 수직이착륙기를 운용할 수 있는 경함모 도입에 나서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대통령이 항모도입에 발 벗고 나선 것은 때마침 발생한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분쟁이 불씨가 됐다. 1996년 2월 이케다 유키히코 일본 외무상은 기자회견을 통해 "독도는 국제법적 측면에서 일본 영토의 일부"라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김영삼 대통령이 이에 대한 단호한 대처 중 하나로 항공모함 도입을 선언했던 것이다.
이후 안 총장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2만t급의 항공모함과 6척의 구축함, 6대의 대형헬기로 구성된 항모전력 건설계획을 2012년까지 확보하겠다는 보고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앞서 항공모함을 국내에 가져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1994년 영유통이란 회사가 소비에트연방(현 러시아)의 키예프급 항공순양함인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를 '고철 수입' 명목으로 국내에 들여왔던 것이다.
이중 노보로시스크는 포항에서 해체됐지만, 민스크는 오염 문제 등으로 인해 지역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결국 중국에 매각됐다. 중국은 민스크를 2년에 걸쳐 연구한 후 결국 테마파크로 활용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항공모함에 대한 논의가 잠시 중단됐지만, 2000년대 들어서며 해군과 방산업계는 다시 항공모함 보유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먼저 항공모함이 아닌 대형 강습상륙함을 먼저 건조하자는 해군 측의 건의가 있었고, 이는 곧바로 강습상륙함 건조로 이어졌다. HJ중공업(당시 한진중공업)이 건조해 2007년 취역한 독도함이 바로 대형 강습상륙함이다.
독도함의 등장과 함께 한국형 항공모함계획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독도급 2번함인 마라도함을 경함모처럼 운용하자는 논의가 진행됐으며, 2015년에는 영국의 대표 항공모함인 7만톤급 퀸엘리자베스급 항모에 대한 검토도 진행됐다.
현대중공업 vs 대우조선 '2파전'
국방부는 지난 2019년 항공모함 관련 계획을 '한국형 항공모함(KCVX)'로 명명하고 본격적인 연구 설계에 착수했다. 첫번째 논의는 항모의 사이즈였다. 논의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 경항모를 먼저 제작하겠다는 게 결론이었다. 항모는 통상 7만톤급 이상을 슈퍼캐리어, 5만톤급 내외를 중형 항모, 3만톤급 정도를 경함모로 분류한다.
2019년 방위사업청으로부터 개념설계를 수주한 현대중공업그룹과 전통의 방산강자인 대우조선해양은 각자 컨소시엄을 꾸려 KCVX사업을 진행 중이다. 양측이 생각하는 차세대 항모의 개념은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열린 '국제 조선 및 해양 산업전'에서 실체가 공개됐다.
먼저 현대중공업그룹이 공개한 KCVX의 외형은 영국의 퀸엘리자베스급 항모와 유사한 모습이다. 해군이 초기에 구상했던 경함모보다 비행갑판 폭이 약 30%이상 확장됐고, 함정 앞부분에는 스키점프대를 적용했다. 전장만 270m에 달하며 전폭은 60m이며 경함모인 만큼 만재배수량은 3만톤이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독도함을 만든 한진중공업과 손을 잡고 직사각형 모습을 한 차세대 항모 이미지를 공개했다. 현대중공업이 선보인 항모이미지보다 덩치가 작기 때문에 운용비 측면에서 유리하며, 함재기의 출격 가능횟수를 뜻하는 '소티생성률'을 높이기 위한 설계로 주목받았다.
2033년 실전배치를 목표로 총 3조원대의 사업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역시 필사적으로 우군을 늘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LIG넥스원·한화시스템 등과 손을 잡고 차세대 항모의 무기체계 및 레이더 개발에 착수했다. 한화시스템은 함정 전투체계(CMS) 개발에 강점을 갖고 있으며, LIG넥스원은 전투체계와 함께 레이더 개발 능력을 보유 중이다.
또한 함재기 개발 및 개조를 위해 한국항공우주산업과도 MOU를 체결했으며, 지난해 8월에는 영국의 항모 제작사인 밥콕과 경함모 기본설계 사업 수주 및 실선 건조를 위한 파트너십을 맺기도 했다. 밥콕은 영국의 퀸엘리자베스급 항모를 설계한 글로벌 방위산업체다.
대우조선은 독도함을 설계·건조한 HJ중공업과 함께 이탈리아 국영조선소 핀칸티에리와 손을 잡았다. 핀칸티에리는 미국의 차세대 호위함과 이탈리아 경함모 2척을 건조했다.
추진체계와 함재기 등 과제들 산적
통상 해군의 함정 획득 사업은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함건조 등의 단계로 이어진다. 해군의 경함모 개념설계는 2019년 10월 현대중공업이 수주해 지난 2020년 12월 완료된 상태다.
이제부터는 기본설계 단계가 진행되고 있다. 기본설계에서는 항모의 추진체계 등이 결정된다. 해군은 이에 대해 지난해 4월 핵 추진이 아닌 재래식 추진체계를 활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래식 추진체계는 ▲증기터빈 ▲가스터빈 ▲디젤 ▲하이브리드 등을 선택할 수 있다. 추진체계 부문은 국내 기업들이 아닌 글로벌 기업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GE와 롤스로이스가 대표적이다.
GE는 통합전기추진(IFEP) 시스템과 하이브리드전기추진(HED) 시스템을 지난해 선보였다. IFEP는 현재 영국 해군의 구축함 추진체계와 유사하며, HED시스템은 캐나다 호위함에 적용돼 사용 중이다.
롤스로이스는 새로운 방식의 통합 전기추진 방식과 하이브리드 전기추진 시스템을 공개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부산항에 입항한 퀸엘리자베스급 항모의 추진체계를 직접 설계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롤스로이스는 항모용 가스터빈 발전기를 공급하는 세계 유일의 제조사다.
그러나 추진체계의 경우 상세설계가 시작되기 전 핵추진 체계가 추가될 수도 있다. 해군이 개발을 추진 중인 차세대 잠수함 사업의 추진체계에 핵추진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는 만큼 항공모함의 추진체계 변경 가능성도 상존해 있어서다.
추진체계와 동시에 주목받는 부분은 KCVX에 탑재될 함재기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대안은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B다. 이미 국내에서 운용 중인 F-35A와 같은 모델이지만, 조종석 바로 뒤쪽에 리프트 팬 장치를 추가해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미들급 전투기다.
문제는 F-35B의 가격이다. F-35B는 현재 대당 300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당초 우리 군은 F-35B의 대당가격을 1000억원을 잡았지만, 미 해군이 F-35B의 도입을 취소하고 F-35C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F-35B의 가격이 급상승했다. 실제 항모 사업을 진행 중인 싱가포르는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대당 3000억원에 F-35B를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F-35B의 대당 가격이 상승하자 대안으로 주목받는 함재기는 KF-21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KF-21의 해군용 모델 개발에 약 7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