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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돈의 질서 ⑯ 엔비디아 그 다음 “반도체 가치사슬"...기획시리즈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진단] 기획시리즈 — 돈의 질서 ⑯: 엔비디아 그 다음… “반도체 생태계에 편승하라”
한때 글로벌 정보기술(IT) 산업의 역사를 지배했던 무소불위의 신화가 존재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소프트웨어 운영체제 ‘윈도(Windows)’와 인텔(Intel)의 하드웨어 중앙처리장치(CPU)가 결합하여 탄생한 ‘윈텔(Wintel) 동맹’이다. 1990년대 후반 닷컴버블 시대를 정두에서 이끌며 세계 PC 시장의 질서를 독점했던 이 동맹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자본주의의 바벨탑처럼 보였다. 윈텔 동맹의 핵심 축이었던 인텔은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불멸의 슬로건을 앞세워 수십 년간 글로벌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독식했고, 자본은 인텔의 실적 변화에 종속되어 움직였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모바일 혁명의 도래와 함께 전력 효율성을 극대화한 ARM 생태계가 부상하자 고지식한 거인 인텔의 요새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1세기 신(新) 금융 질서가 도래하고 인공지능(AI)이라는 전대미문의 기술 괴물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닷컴버블의 주역이었던 인텔은 뉴욕 증시의 뒤안길로 쓸쓸히 밀려났다. 그 찬란했던 왕좌를 차지한 것은 대규모 병렬 연산에 특화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무기로 전 세계 자본을 빨아들이고 있는 엔비디아(NVIDIA)다.

역사는 우리에게 냉혹한 교훈을 던진다. 기술 패러다임이 전환될 때마다 주역은 반드시 바뀌며, 어제의 황제가 오늘의 낙오자가 되는 비정한 전장이 바로 반도체 시장이다. 실전 재테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금 엔비디아의 독주와 화려한 주가 창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AI 성장에 따라 필연적으로 전개될 반도체 가치사슬(Value Chain)의 세대교체와 차세대 생태계 지도를 미리 읽어내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반도체 섹터의 본질은 순차 연산에 특화된 CPU 중심의 세계였다.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CPU는 하이테크 산업의 알파이자 오메가였으며, 자본은 이 연산 장치의 미세공정 한계를 뜻하는 ‘무어의 법칙’에 따라 춤을 추었다. 하지만 딥러닝과 생성형 AI의 등장은 컴퓨팅의 근본 구조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수조 개의 매개변수를 동시에 학습하고 연산해야 하는 복잡한 인공지능 환경에서 직렬 연산 구조의 CPU는 치명적인 병목현상을 노출하며 한계에 부딪혔다. 이 거대한 기술적 틈새를 파고든 것이 엔비디아의 GPU다. 수천 개의 코어를 통해 대규모 데이터를 동시에 대량으로 연산할 수 있는 병렬 구조의 GPU는 AI 데이터센터의 절대적인 필수재로 등극했다. 뉴욕 증시의 주도권이 인텔에서 엔비디아로 급격히 이동한 배경이다.

유동성이 대폭발하는 국면에서 자본의 이동은 단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가치사슬의 취약점을 찾아 끊임없이 번져나간다. GPU의 연산 속도가 아무리 비약적으로 빨라진들, 연산 장치와 메모리 반도체 사이에서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로의 속도가 받쳐주지 못하면 전체 서버가 멈춰 서는 ‘메모리 벽(Memory Wall)’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장한 자본의 다음 폭발지가 바로 HBM(고대역폭메모리)이다. D램을 수직으로 높이 쌓아 올려 데이터 전송 속도를 혁명적으로 끌어올린 HBM은 엔비디아 가속기의 성능을 극한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필수 동반자가 되었다. 이 단계에서 글로벌 유동성은 HBM 시장의 기술적 초격차를 달성한 독점적 메모리 기업들로 무섭게 쏠려 들어갔다. HBM의 폭발은 자연스럽게 고용량 D램과 기업용 대용량 저장장치인 고성능 낸드플래시(SSD)의 슈퍼사이클로 이어지며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자산 가치를 동반 견인했다. 전통적인 메모리 반도체의 슈퍼사이클 이후, 자본이 도달할 반도체 생태계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AI 모델이 더욱 거대해지고 데이터센터의 천문학적인 전력 소모와 비용이 인류의 감당 범위를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구조적으로 ‘새로운 반도체 아키텍처(구조)’를 갈구하고 있다. 숫자가 찍힐 수밖에 없는 다음 주도주 섹터는 명확하다.

① CXL(컴퓨터 익스프레스 링크)

HBM이 ‘속도’의 한계를 극복했다면, CXL은 메모리 ‘용량’의 한계를 파괴하는 기술이다. 기존의 서버 구조는 CPU나 GPU 한 대당 장착할 수 있는 D램의 물리적 용량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차세대 인터페이스인 CXL 기술을 도입하면 메인보드 전반의 메모리를 풀(Pool) 형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D램 용량을 무한대에 가깝게 확장할 수 있다. 거대언어모델(LLM)이 고도화될수록 서버의 메모리 증설 요구는 절대적이므로, CXL 관련 장비 및 칩 설계 기술을 확보한 기업으로 거대 자금이 이동하는 것은 필연적 수순이다.
② PIM(프로세싱 인 메모리): 연산과 저장의 초융합

현재의 컴퓨터 구조는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꺼내 연산 장치로 보내고, 연산이 끝나면 다시 메모리로 저장하는 소모적인 과정을 반복한다. 이 이동 과정에서 엄청난 전력이 낭비되고 병목이 발생한다. PIM은 메모리 반도체 내부에 아예 연산 장치(프로세서) 기능을 직접 박아 넣는 초혁신 기술이다. 데이터의 불필요한 이동 없이 메모리 스스로 연산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최대 적인 ‘전력난’을 해결할 궁극의 치트키로 꼽히며, 월가의 거대 자본이 가장 주목하는 차세대 핵심 섹터다.

③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와 NPU(신경망처리장치)의 대중화

지금까지의 AI가 거대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안에서만 작동하는 전유물이었다면, 앞으로는 스마트폰, PC, 자동차(자율주행) 내부에서 인터넷 연결 없이 AI를 직접 구동하는 ‘온디바이스 AI’ 시대가 본격화된다. 단말기 내부라는 제한된 환경에서는 비싸고 전기를 많이 먹는 엔비디아의 GPU를 쓸 수 없다. 대신 AI 연산에만 특화되어 전력 효율성을 극대화한 NPU(신경망처리장치)가 대량 탑재된다. 자본의 축이 거대 인프라에서 개인용 단말기 칩셋 설계 및 반도체 지식재산권(IP)을 가진 특화된 팹리스 기업들로 이동하고 있는 이유다.
돈의 질서가 재편되는 유동성 폭발의 시대에 부를 거머쥐는 방법은 자본이 이동하는 파이프라인의 다음 길목을 예측하고 내 돈을 먼저 배치하는 전략적 선취매다. 이미 주가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엔비디아 본주에만 매달리는 것은, 과거 닷컴버블의 끝자락에서 인텔을 추격 매수했던 우를 범하는 리스크를 안게 된다. 독점적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가치를 선점힐 필요가 있다. HBM이든 CXL이든 차세대 반도체를 물리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공정의 미세화와 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ing) 기술이 필수적이다. 네덜란드의 ASML처럼 대체 불가능한 노광 장비를 공급하거나, 차세대 후공정(OSAT) 핵심 검사 장비 및 특수 소재를 글로벌 반도체 거인들에게 독점 공급하는 핵심 소부장 기업들을 발굴하여 장기 보유해야 한다. 거인들의 싸움에서 진짜 돈을 버는 것은 무기를 독점 공급하는 대장간이다.

지정학적 공급망 재편의 수혜주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 미·중 패권 경쟁과 공급망 블록화로 인해 반도체 공장은 미국과 동맹국 내에 강제로 지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현지 공장 건설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입거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다변화를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독과점적 생태계 파트너사들을 포트폴리오에 반드시 일정 비율 편입시켜야 한다. 돈의 질서는 잔인하리만큼 명확하다. 어제의 대명사였던 윈텔 동맹이 오늘의 AI 동맹에 자리를 내주었듯, 오늘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의 독주 체제 역시 내일의 CXL, PIM, NPU라는 기술의 진화와 생태계 재편 앞에서 분화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시장은 단일 기업의 독 무대가 아니라, 수많은 톱니바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생태계 시스템이다. 뉴스 헤드라인과 단기적인 주가 흐름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공지능의 진화 단계에 따라 반도체 가치사슬 지도가 어떻게 새로 그려지고 있는지 그 이면의 흐름을 냉정하게 추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엔비디아가 뿜어내는 천문학적인 유동성이 도달할 다음 정착지인 차세대 메모리와 온디바이스 칩의 길목을 선점하라. 기술의 진화 경로를 길목에서 지키는 자만이 새로운 돈의 질서가 제공하는 가장 거대하고 확실한 부의 과실에 접근할 수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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