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대 1c D램·자체 4나노 파운드리 승부수… 번스타인, 점유율 46% 역전 전망
설비투자 가속 속 단가 인상 추진… 공정 수율 안정화가 최대 분수령
설비투자 가속 속 단가 인상 추진… 공정 수율 안정화가 최대 분수령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AI) 가속기 시장의 폭발적 성장 이후 SK하이닉스가 독점하던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권력 지도가 요동치고 있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기술 규격을 앞세워 오는 2027년 글로벌 HBM 시장 1위 자리를 탈환한다는 구체적 관측이 제기됐다. HBM이 단순한 범용 메모리에서 벗어나 고객사 맞춤형 '반(半)커스텀 부품'으로 이동하는 HBM4 시장에서, 미세공정 한계 돌파 능력과 자체 파운드리 생태계를 동시 보유한 삼성전자의 종합 반도체 기업(IDM) 역량이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대만 반도체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는 29일(현지시각) 글로벌 투자은행(IB) 번스타인의 최신 시장 전망 보고서를 인용해 삼성전자의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이 오는 2027년 46%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28%, 올해 35% 추정치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낸다는 분석이다.
반면 2022년 이후 시장 점유율 50%대를 수성해 온 SK하이닉스는 올해 48%를 유지한 뒤 2027년 37%로 내려앉으며 선두를 내줄 것으로 관측됐다. 미국 마이크론은 18%에 그칠 전망이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들이 AI 칩에 HBM을 본격 채택한 이래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를 역전한다는 시장 예측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정 규격 바꾼 6세대 HBM4 기술 격차
HBM4 세대부터는 단순히 규격화된 메모리를 공급하는 단계를 넘어 고객사의 주문형 반도체(ASIC)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초기 설계 단계부터 공동 최적화(Co-design)를 진행하는 패러다임이 전개된다.
이 시점에서 삼성전자는 올해 2월 선제적으로 HBM4 양산에 돌입해 초기 출하를 시작했다. 제품 공급 네 달 만에 관련 매출 10억 달러(약 1조 5400억 원)를 돌파했으며, 올해 전체 HBM4 누적 매출은 100억 달러(약 15조 4200억 원)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가장 큰 차별점은 D램 적층 기반이 되는 미세공정 기술력이다. 삼성전자는 HBM4 하단 D램 코어 다이에 10나노미터급 6세대(1c) 공정을 최초로 적용해 양산 성능 우위를 확보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HBM4 유닛에 기존 5세대(1b) D램 공정을 혼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전자 측 초기 샘플 평가 기준에 따르면 1c D램 기반 HBM4는 기존 1b 제품 대비 데이터 전송 속도가 최대 20% 빠르고 소비전력 효율은 25%가량 높다. 양산 수율이 전제된다면 거대언어모델(LLM) 데이터센터 환경에서 빅테크 물량을 선점할 강력한 무기다.
두뇌 역할을 하는 베이스 다이(로직 다이) 생산 전략도 시장 판도를 가를 변수다. SK하이닉스는 대만 TSMC의 12나노미터 파운드리 공정과 검증된 수율 기반 안정성, 신속한 고객 인증 속도를 무기로 삼는 반면, 삼성전자는 자사 4나노미터 선단 파운드리 공정을 통해 로직 다이를 자체 생산한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턴키(일괄 생산)’ 역량이 공급 안정성과 원가 절감 측면에서 새로운 진입장벽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평택 캠퍼스 증설 속도전과 수익성 확대 전망
삼성전자는 글로벌 수요 확보를 위해 생산 능력 확충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경기도 평택 캠퍼스 P4 공장에 HBM4 전용 1c D램 신규 라인을 구축하며 12인치 웨이퍼 기준 달마다 최대 10만 장 규모의 양산 체제를 다지고 있다. 여기에 평택 캠퍼스의 마지막 생산 기지인 P5 공장 2라인(Fab 2) 착공 시기를 올해 7월로 확정했다. 기존 일정보다 여섯 달가량 앞당긴 조치다.
P5 2라인이 가동되면 달마다 최대 30만 장의 12인치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추가 확보하게 된다. 먼저 공사를 시작한 P5 1라인(월 30만 장)과 이번 2라인(월 20만~30만 장)의 생산 능력을 합치면 최종적으로 달마다 최대 60만 장 수준의 거대한 생산 기지가 완성된다.
범용 D램 공급 부족과 HBM의 타이트한 수급 여건이 맞물린 상황에서 점유율 확대를 노린 전략이다.
수익성 극대화 발판도 마련됐다. 범용 D램 단가 급상승으로 인해 일부 웨이퍼를 기준으로 한 수익성이 HBM을 위협하자, 삼성전자는 내년도 공급 계약 협상에서 HBM4를 포함한 전체 라인업 가격을 올해 대비 최대 2.5배 인상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년 가격 인상을 가장 공격적으로 주도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HBM 부문 영업이익이 올해 14조 원(약 91억 달러) 수준에서 내년 수십조 원대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부 낙관적 전망치에서는 최대 80조 원대 중반까지 제시되지만, 전사 역대 최대 영업이익이 60조 원 안팎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범용 D램 가격 초호황과 마진율 90%에 육박하는 극단적 시장 상황을 가정한 가상의 수치라는 현실성 논란이 존재한다.
협상력 이면의 '종합 수율' 리스크와 고객사 저항 메커니즘
그러나 가파른 성장 시나리오 뒤에 도사린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HBM 경쟁의 본질을 '수익성 = (가격 × 출하량) - (수율 실패 비용 + 설비투자 부담)' 공식으로 정의한다.
특히 회로 선폭이 극한으로 좁아진 1c D램 공정은 극자외선(EUV) 적용 공정 수 증가로 인해 결함 밀도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단일 D램 공정 수율을 확보하더라도 실리콘관통전극(TSV) 적층 결합 과정에서 불량이 발생하는 '패키징 포함 종합 수율' 리스크가 핵심 지점이다.
과거 GAA 파운드리 공정 등 초기 첨단 공정에서 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삼성전자의 이력을 감안할 때, 초기 종합 수율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대규모 설비투자는 막대한 고정비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강력한 가격 저항 메커니즘도 변수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등 대형 고객사들의 AI 설비투자 규모가 유지되고 GPU 쇼티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공급 탄력성이 낮은 HBM 특성상 가격 인상을 수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동시에 고객사들은 리스크 헤지를 위해 SK하이닉스(안정적 수율·TSMC 연합)의 공급 비중을 확대하거나 자체 주문형 반도체(ASIC) 개발 속도를 높여 삼성전자의 협상력을 무력화하려 할 것이다. 후발 주자이지만 비용 효율성을 무기로 틈새를 노리는 마이크론의 추격도 무시할 수 없다.
향후 시장 주도권 전망
2027년 HBM 시장의 주도권 향방은 삼성전자가 단행한 P4·P5 라인의 1c D램 초기 종합 수율 확보 시점과 내년 상반기 타이트한 수급 상황 속에서 치러질 가격 협상 결과에 의해 최종 결정될 것이다.
낙관적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삼성전자는 수직통합 종합 반도체 기업의 강점을 극대화하며 과거 메모리 패권을 완전 복원하겠지만, 공정 전환 지연이라는 비관적 압박을 맞닥뜨릴 경우 과잉 공급과 재고 자산 축적이라는 메모리 사이클 고유의 부작용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내부 공정 효율성 극대화와 외부 공급망 통제력이 향후 2년의 성패를 가를 핵심 열쇠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