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A 사무총장 "에너지 신뢰 무너져... 재생에너지·원전 중심 대전환 불가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英 북해 유전 개발 제동... "에너지 안보 핵심은 탈탄소"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英 북해 유전 개발 제동... "에너지 안보 핵심은 탈탄소"
이미지 확대보기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24일(현지시간), 파티 비롤(Fatih Birol)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이번 위기로 화석연료에 대한 국가적 신뢰가 무너졌으며,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이 그 공백을 메우는 '에너지 대전환'이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됐다"고 보도했다.
"깨진 꽃병은 붙일 수 없다"... 신뢰 잃은 석유, 원전·재생에너지가 대체
비롤 사무총장은 현재의 에너지 위기를 "가장 컸던 과거의 모든 위기들을 합친 것보다 더 거대한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그는 이란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공급 불안이 화석연료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꽃병은 이미 깨졌고 입은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며 "각국 정부는 에너지 전략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며, 이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에 대한 비약적인 투자와 전동화(Electrification) 시대로의 급격한 전환을 불러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IEA 데이터에 따르면 이번 사태 이후 주요국들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태양광과 풍력 비중을 상향 조정하고 있으며, 유럽을 중심으로 '원전 르네상스' 움직임도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그는 "태양광은 이미 가격 경쟁력 면에서 석탄을 앞질렀으며 성장 속도 또한 훨씬 빠르다"며 "재생에너지는 선택이 아닌, 결코 후회하지 않을 유일한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북해 유전 개발 논란에 직격탄... "에너지 안보에 도움 안 돼"
비롤 사무총장은 에너지 안보를 명분으로 북해 유전 개발 확대를 추진 중인 영국 정부와 석유 업계의 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현재 영국 내에서는 '잭도(Jackdaw)'와 '로즈뱅크(Rosebank)' 유전 등에 대한 생산 허가 여부를 두고 찬반 논란이 뜨거운 상황이다.
그는 "해당 유전들이 개발되더라도 영국의 에너지 안보를 실질적으로 강화하거나 가스·석유 가격을 낮추지는 못할 것"이라며 "영국은 여전히 국제 시장의 가격 순응자(Price taker)이자 수입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대의를 차치하더라도, 수십 년이 걸리는 신규 탐사 투자는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다만, 기존 유전의 범위를 확장하는 '타이백(Tieback)' 방식에 대해서는 효율적 운영 측면에서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영국 노동당 관계자는 "세계 최고의 에너지 경제학자가 공정하고 관리된 전환의 필요성을 재확인해 준 것을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peace) 등은 잭도 유전 개발을 중단할 경우 열 관련 사망자 감소 등 약 161억 파운드(약 32조 1900억 원)에 달하는 사회적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호르무즈 봉쇄 해제돼도 '후폭풍' 지속... 공급망 패러다임 변화
비롤 사무총장은 50km에 불과한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는 현실에 우려를 표하며, 설령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그 여파는 식량, 비료, 헬륨, 소프트웨어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위기가 단순한 일시적 공급 부족을 넘어 '화석연료 기반 공급망의 구조적 종말'을 뜻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씽크탱크 E3G의 에드 매튜(Ed Matthew) 영국 국장은 "영국의 화석연료 매장량은 이미 90% 이상 고갈된 상태"라며 "진정한 경제 안보의 길은 자국 내 청정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뿐"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영국과 유럽연합(EU), 주요 산유국 등 50여 개국 정부 대표들은 오는 28~29일 콜롬비아 산타마르타에서 열리는 '제1회 탈화석연료 전환 국제회의'에 참석한다.
이번 회의에서는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를 통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최대 10% 감축하는 방안 등 중동발 오일 쇼크에 따른 글로벌 대응 전략이 집중 논의될 계획이다.
에너지 전환, '속도'보다 '방향'의 문제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비롤 사무총장의 발언이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을 상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경고라고 보고 있다.
과거 1, 2차 오일 쇼크가 공급처 다변화에 집중했다면, 2026년의 이 위기는 에너지원 자체를 화석연료에서 탈피시키는 근본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오는 28일 열리는 콜롬비아 회의에서 도출될 구체적인 감축 합의안과 향후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의 포트폴리오 변화로 모이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