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자국산 원료 덕분에 아시아 증시 1위 — 한국은 공장 셧다운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 시 비료·나프타 가격 추가 급등 전망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 시 비료·나프타 가격 추가 급등 전망
이미지 확대보기블룸버그(Bloomberg)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화학 회사 페트로나스케미컬그룹(Petronas Chemicals Group Bhd)의 주가가 이달에만 102% 치솟으며 MSCI 아시아 지수 편입 종목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간 MSCI 아시아 지수가 13% 넘게 빠진 것과 정반대 흐름이다. 블룸버그가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이달에만 7개 이상의 증권사가 해당 종목의 투자의견을 일제히 올렸다.
지도 위의 한 줄이 운명을 가른다
2026년 2월 28일(현지시각)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동 공습한 뒤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해협 통항을 막으면서 사실상 해협이 봉쇄됐다.
브렌트유는 이달 초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최고 126달러까지 치솟았고, 해협을 통해 이동하던 세계 비료 교역량의 30%가 발이 묶였다.
우드맥킨지(Wood Mackenzie)는 봉쇄 이전 하루 138척이 통과하던 해협이 현재 10척 미만으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한 달 봉쇄만으로도 석유화학 원료 약 700만t, 플라스틱 약 200만t, 메탄올·암모니아·요소 같은 가스 기반 제품 약 400만t의 수출이 막힌 것으로 추산된다.
이 혼란 속에서 페트로나스케미컬은 거꾸로 수혜를 누리고 있다. 원료를 말레이시아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구조 덕분이다.
매쿼리캐피털(Macquarie Capital) 태국 리서치 총괄 코샬 라다(Kaushal Ladha)는 "페트로나스케미컬의 원료는 국내에서 조달해 봉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이 종목에 아무런 포지션을 갖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긍정적 재료 하나만으로도 주가가 큰 폭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일본 석유화학 전문가 가와카미 마사노리(Masanori Kawakami)는 "말레이시아는 자국 원료가 있고 페트로나스는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지 않았다"며 "현재 공급 차질은 주로 중동산 나프타를 수입해 쓰는 생산업체들에 집중돼 있다"고 밝혔다.
비료 수요 폭발, 증권가 목표주가 줄줄이 상향
파종철을 앞두고 비료 수요가 갈수록 치열해지는 점도 이 회사 실적 전망을 밝히고 있다. 중동은 전 세계 요소(urea) 수출량의 3분의 1 이상, 암모니아 수출량의 약 4분의 1을 담당하는 지역이다.
봉쇄가 2026년 상반기 내내 이어질 경우 세계 비료 가격이 평균 15~20% 더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혜가 페트로나스케미컬 비료·메탄올 사업 부문으로 곧장 흘러들 것이라는 분석이 증권가에서 나온다.
CGS인터내셔널증권(CGS International Securities)은 2026년 핵심 순이익 추정치를 44% 올린 뒤 목표주가를 19% 높여 6링깃 58센(약 1.63달러, 약 2450원)을 새로 제시했다.
CGS인터내셔널 레이먼드 얍(Raymond Yap) 애널리스트는 분석 보고서에서 "해협이 예상보다 오래 막힐수록 나프타 기반 경쟁사들의 원료 부족이 심각해지고, 페트로나스케미컬 제품 판매가가 가파르게 오를 조건이 갖춰진다"고 썼다.
말레이시아 증시 전체도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순에너지 수출국이다.
3월 한 달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말레이시아 주식을 2530만 달러(약 380억원) 순매수했다. 아시아 대다수 신흥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 석화 업계는 다른 세상 — '재고 2주치'로 버티는 중
페트로나스케미컬이 반사이익을 만끽하는 동안 한국 석유화학 업계는 정반대 처지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확보한 나프타 재고는 현재 2~3주 분량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은 국내 나프타 수요의 45%를 수입에 의존하는데, 그 가운데 중동산 비중이 77%에 달한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서 국내 수입 나프타의 54%를 공급하던 중동 루트가 막혔다. 원료 의존도의 구조적 취약함이 한 방에 노출된 셈이다.
석화 업계에서는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2주 뒤부터 수급에 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이 크게 늘었는데, 글로벌 수요가 부진해 석화 제품에 이를 전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LG화학은 지난 23일부터 연산 80만t 규모의 여수 제2공장 가동을 멈췄고, 롯데케미칼은 정기 보수 일정을 3주 앞당겨 공장을 세웠다.
정부는 나프타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지정하고 수출을 사실상 전면 금지했으나, 수출 통제로 확보 가능한 물량은 월 소비량 약 400만t에 비해 2~3일치에 그쳐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LG화학이 러시아산 나프타 2만 7000t을 들여오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국내 월평균 사용량의 0.68% 수준이다. 이번 계약의 근거가 된 미국의 대러 제재 완화 조치는 오는 4월 11일까지만 유효해, 추가 도입 여부는 유동적으로 남아 있다.
무디스(Moody's Ratings) 최고신용책임자 앳시 셰스(Atsi Sheth)는 최근 CNBC에 "석유화학 업계는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홍해 사태에 이어 이번 호르무즈 위기까지 연이은 충격을 받고 있다"며 "재고가 소진되면 공급 부족이 빠르게 반대 방향으로 작용해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 상승 압력이 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원료 조달 구조의 차이 하나가 한 나라의 주가는 두 배로 밀어올리고, 다른 나라의 공장은 세우는 결과를 낳았다.
호르무즈해협이 언제 열릴지 아무도 모르는 지금, 한국 석화 업계가 오는 4월 11일 미국 제재 완화 시한 이후 어떤 대체 공급망을 손에 쥘 수 있느냐가 이 위기의 진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