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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호르무즈 보험 카드’의 딜레마, 글로벌 해운 시장 현실에 발목

29조 원 투입하는 '미국판 재보험' 정책... 시장 실태 무시한 '아메리카 퍼스트' 비판 직면
보험료 보전보다 승무원 안전이 관관... 군사적 호위 없는 금융 지원은 실효성 낮아
미국 정부는 당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직접 보험을 판매하려 했으나, 최근 국제개발금융공사(DFC)를 통한 ‘재보험(Reinsurance)’ 지원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정부는 당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직접 보험을 판매하려 했으나, 최근 국제개발금융공사(DFC)를 통한 ‘재보험(Reinsurance)’ 지원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마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29조 원 규모의 금융 지원책을 내놨으나, 정작 해운 현장과 국제 보험 시장의 현실을 외면한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200억 달러(약 29조 원) 규모의 정치적 위험 보험 지원 계획은 국제 해상보험의 중심지인 런던 로이즈(Lloyd’s of London)의 견고한 생태계와 선주들의 안전 우선주의라는 벽에 부딪혔다.

특히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금융 비용의 문제를 넘어 승무원의 생명권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미 해군의 직접적인 호송 지원 없이는 1000척이 넘는 적체 선박을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런던 주도 해상보험 생태계 정조준 못한 ‘미국식 해법’의 한계


미국 정부는 당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직접 보험을 판매하려 했으나, 최근 국제개발금융공사(DFC)를 통한 ‘재보험(Reinsurance)’ 지원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는 해상 전쟁 보험의 90% 이상이 영국 런던 시장에서 소화되는 현실을 뒤늦게 인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보험 중개 전문 법인 맥길 앤 파트너스(McGill and Partners)의 데이비드 스미스 해상 부문 책임자는 “전쟁 위험 보험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생태계가 존재하며, 미국 보험사가 이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관리들이 런던 시장의 중개인들에게 연락해 영업 방식이나 기밀 데이터를 요구했으나, 로이즈 측은 글로벌 표준과 동떨어진 미국의 접근 방식에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

이러한 시장 저항에 부딪히자 DFC는 미국 대형 보험사 처브(Chubb)를 앞세워 200억 달러를 재보험 기금으로 활용하는 우회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DFC 관계자는 이 혜택이 “특정 기준을 충족하는 선박”에만 한정될 것이라고 밝혀, 당초 공언했던 ‘전 세계 에너지 흐름 보장’이라는 명분은 사실상 미국 관련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으로 축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돈보다 목숨”... 보험료 인하가 통항 재개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대책이 문제의 본질인 ‘물리적 안전’을 비껴갔다는 비판이 우세하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 보험료는 평시 선박 가액의 0.25% 수준에서 최근 1~2%까지 4배에서 8배가량 폭등했다.

하지만 선주들이 운항을 포기하는 진짜 이유는 높은 보험료가 아니라 이란의 직접적인 공격에 따른 승무원의 생명 위협이다.
캐피털 클린 에너지 캐리어스(Capital Clean Energy Carriers)의 제리 칼로기라토스 최고경영자(CEO)는 “지금 선주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험금 보전이 아니라 승무원의 생존 보장”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보험 중개사 마쉬(Marsh)의 마커스 베이커 책임자 역시 “로이즈 시장은 이미 보험 인수 준비가 되어 있지만, 선주들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뿐”이라며 미국 정부의 진단에 의문을 제기했다.

29조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미 해군의 대대적인 선단 호위 작업(Convoy)이 병행되지 않는 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병목 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해군 호위 역시 이란과의 군사적 긴장을 극도로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 행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에너지 안보 위기 속 한국 경제에 던지는 중차대한 함의


이번 사태는 원유와 천연가스(LNG)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 노선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적체 선박이 1000척을 넘어서면서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는 국내 물가 상승과 경상수지 악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국내 해운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보험 지원책은 결국 자국 선박이나 처브 등 미국 보험사의 이익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국적 선사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보기 어려운 구조라면, 정부 차원에서 독자적인 안전 확보 대책이나 다국적 해상 안전 파트너십 강화를 검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향후 글로벌 해상보험료의 상한선이 형성될지 여부는 미국 재보험 프로그램의 세부 지침이 확정되는 이달 말경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그러나 물리적 충돌 위험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금융 지원이라는 미봉책만으로는 멈춰 선 에너지 동맥을 다시 뛰게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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