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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에너지 전쟁] 국제유가 100달러 돌파… 한국 제조업, '호르무즈 봉쇄' 직격탄 맞나

브렌트유 주간 30% 폭등, 유럽 가스 65% 급등… 에너지 자립 미국만 '나 홀로 방패' 가동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이탈리아 인플레 1%p↑ vs 미국 0.2%p↑"… 에너지 수입국-수출국 희비 극명
연준 금리 인하 축소·지연 불가피… 한국은행도 긴축 기조 유지 압박 가중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군사작전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국제유가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군사작전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국제유가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세계 5위 원유 수입국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군사작전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국제유가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148800)를 돌파했다. 한국이 들여오는 원유의 약 7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이번 위기는 단순한 국제 뉴스가 아니라 국내 물가와 제조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에너지 충격 인플레이션 영향 비교.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에너지 충격 인플레이션 영향 비교. 도표=글로벌이코노믹


'에너지 자립' 미국의 이중 방어막… 수입국은 즉각 타격


파이낸셜타임스(FT)9(현지시간) 이란발 중동 분쟁이 격화할 경우 에너지 자급률에 따라 각국 경제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2017년부터 천연가스, 2020년부터 석유 순수출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어,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기에 오히려 생산자 수익이 증가하는 '()구조'를 갖췄다는 것이 핵심 논지다.

반면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유럽과 아시아 경제권은 즉각적 충격파에 노출됐다. 국제유가의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전쟁 발발 이후 지난주에만 약 30% 치솟았고, 유럽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이틀 만에 65% 가까이 폭등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가 주요 15개국을 대상으로 에너지 비용 충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보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이탈리아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아 올해 4분기 물가상승률이 기존 전망 대비 1%포인트 이상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영국과 유로존 전체도 0.5%포인트 이상 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되는 반면, 미국은 0.2%포인트 상승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호르무즈 해협 마비… 한국·중국·인도 '공급망 비상'


아시아 제조 강국인 한국과 중국, 인도의 취약성이 특히 두드러진다. 중국은 원유 소비량의 70~75%를 수입에 의존하며, 이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한다. 한국 역시 중동에서 들여오는 원유가 전체 수입의 약 70%에 달해,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정유·석유화학·철강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원가 부담이 급격히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 정부도 비상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수급 비상점검회의를 연일 가동하고 있으며, 전략비축유 방출 가능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내 전략 비축유는 최근 1억 배럴 수준으로,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에 따라 민간 비축유까지 합산할 경우 비상시 약 210일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는 IEA 회원국 중 비축일수 기준 세계 6위 수준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비축유 방출만으로 구조적 공급 차질을 막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임스 나이틀리 ING 수석 국제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타 지역의 원자재 공급 중단 사태를 직접 겪지 않겠지만, 핵심 생산 요소 비용 상승으로 모든 국가가 경제 상황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다만 중국의 경우 정부 차원의 소매 가격 통제, 전략비축유 활용, 러시아산 원유 수입 확대 등을 통해 충격 분산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편 9일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G7 재무장관은 10(현지시간) IEA 파티 비롤 사무총장과 긴급 전화회의를 열고, 이란 분쟁으로 인한 유가 급등에 대응해 3~4억 배럴 규모의 전략비축유 공동 방출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을 포함한 3개국이 이미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IEA 32개 회원국 전체 비축량(12억 배럴)25~30%에 해당하는 전례 없는 규모다.

'가스 섬' 미국, 천연가스는 방어… 석유는 '다른 게임'


미국은 이른바 '가스 섬(Gas Island)'으로 불릴 만큼 천연가스 시장에서 독자적 행보를 보인다. 데이비드 옥슬리 캐피털 이코노믹스 수석 기후·원자재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능력이 생산량을 전부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풍부해, 국내 가스 가격의 상승폭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주 유럽·아시아 가스 가격이 폭등하는 동안 미국 내 가격은 소폭 상승에 그쳤다.

그러나 석유 시장의 사정은 판이하다. 국제유가와 직접 연동되는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미국자동차협회(AAA) 집계 기준 38일 갤런당 3.45달러까지 올라, 지난해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의 물동량 억제가 3월 내내 지속될 경우 원유와 정제품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참고로 브렌트유의 역대 최고가는 2008년 기록한 배럴당 147.50달러(219400)이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배럴당 130달러(193400)를 넘겼다. 당시 미국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5달러를 잠시 넘어섰다.

2008·2022년과 무엇이 다른가, '3중 위기'의 현실


이번 에너지 충격이 과거와 구별되는 점은 세 가지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봉쇄라는 점에서 2022년 러시아 제재와 성격이 다르다. 2022년에는 대체 공급선 확보가 가능했지만, 세계 석유 교역량의 20%, LNG 교역량의 20%가 통과하는 해협이 막힌 것은 대체재 확보 자체가 난제다. 둘째, 미국의 전략비축유(SPR)2022년 방출 이후 약 41500만 배럴 수준으로 줄어 여유가 크게 축소됐다. 셋째, 글로벌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 갈등이 겹친 '복합 위기'라는 점에서 단순 공급 충격과는 파급력이 다르다.

ING는 지난 6일 분석에서 "2022년과 달리 현재는 임금 상승률이 둔화되고, 노동시장 과열이 해소된 상태여서 2차 인플레이션 파급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에너지 가격이 장기간 고공행진할 경우 경기침체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앙은행 '딜레마'… 연준·한은 모두 발목 잡혀


이러한 에너지발 물가 압력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신 폭을 크게 좁히고 있다.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당초 전망했던 연내 2~3회 금리 인하를 축소해 1~2회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첫 인하 시점도 당초 예상보다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영국은행(BoE)도 추가 금리 인하에 한층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은행 역시 부담이 가중된다. 올해 상반기 기준금리 인하가 기정사실로 여겨졌으나, 국제유가 100달러(148800) 돌파와 원·달러 환율 상승이 맞물리면 물가 안정 목표 달성이 불투명해진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4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하고, 에너지 가격 추이를 관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 수출국은 '반사이익'… 수입국 소비자는 '지갑 방어전'


데이비드 에이크먼 영국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 소장은 "에너지 가격 상승은 국가 간 소득을 재배치하는 강력한 기제"라며 "노르웨이나 캐나다처럼 에너지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는 가격 상승의 수혜를 누리겠지만, 수입국 소비자들의 지출 위축으로 전 세계 수요 감소와 성장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채텀하우스도 지난 6일 발표한 분석에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에서 연중 고착될 경우 유럽·아시아 인플레이션이 약 1%포인트 추가 상승하고, GDP 성장률은 0.25~0.4%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도 지난 5일 방콕에서 열린 '2050년의 아시아' 콘퍼런스에서 "이번 분쟁이 장기화하면 글로벌 에너지 가격, 시장 심리, 성장, 인플레이션에 명백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각국의 대비를 촉구했다.

이번 위기는 에너지 수입 구조의 '약한 고리'가 어디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은 중동 의존도 70%라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으면서도, 원자력·재생에너지 확대와 수입선 다변화라는 과제를 반복적으로 미뤄왔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힐 때마다 '비상 점검'에 나서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에너지 안보를 단기 위기관리가 아닌 국가 전략의 최상위 의제로 격상시켜야 할 때다. 전쟁의 향방 못지않게, 이 위기를 어떻게 구조적 전환의 계기로 삼을 것인지가 한국 경제의 중장기 체력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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