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이다. 나라 경제도 공산당이 직접 영도하고 있다. 경제의 판도는 물론이고 기업의 운명도 사실상 공산당이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공산당 최고 수뇌부가 기업의 현장을 직접 방문한다는 것은 의미가 자못 크다.2018년 4월 26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생산 공장 현장에 최고 지도자 시진핑 국가주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에 부품 공급 중단 제재를 단행하며 글로벌 기술 봉쇄의 포문을 열었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시 주석의 YMTC 방문은 단순한 산업 현장 독려가 아니었다. 최고 권력자가 특정 첨단 반도체 제조 현장을 직접 찾아 국가 총력전을 선언한 것은 중국 현대 산업사에서 유일무이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날 시 주석은 도열한 임직원과 연구진을 향해 다음과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 심장이 약하면 아무리 덩치가 크더라도 강한 사람이 될 수 없다. 핵심 기술은 구걸해서 얻을 수 없으며, 오직 독자적인 혁신으로 돌파해야 한다." 이 발언은 중국의 반도체 자립 전략을 단순한 산업 정책 수준에서 '국운이 걸린 국가 최우선 과제'로 격상시킨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중국 정부는 3,400억 위안(약 60조 원) 규모의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빅펀드 2기)를 가동하고, 2024년 이후 3,440억 위안 규모의 빅펀드 3기까지 잇따라 투입하며 YMTC와 창신메모리(CXMT)에 천문학적인 국부 자금을 쏟아부었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 굴기를 이끄는 양대 기둥은 D램의 창신메모리(CXMT)와 낸드플래시의 양쯔메모리(YMTC)이다. 두 기업 모두 상하이 증권거래소의 첨단기술주 중심 시장인 커창반(STAR Market) 상장을 본격 추진하며 글로벌 자본 시장의 중심에 섰다.CXMT는 이미 295억 위안 규모의 공모 자금을 조달하여 D램 생산 능력 확충과 차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 라인 구축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YMTC 역시 상장 주관사(중신증권 등)를 선정하고 커창반 상장 심사 절차에 진입하였다. 조달된 수조 원 대의 자금은 우한 3공장 클린룸 구축, 200단~300단급 낸드 수율 안정화, 미국 제재에 맞선 자국산 장비·소재 생태계 육성에 전량 투입할 예정이다. 이처럼 관영 자본과 민간 공모 자금이 합쳐지면서, 글로벌 메모리 시장은 중국발 막대한 설비 투자가 유발할 공급 폭풍의 직격탄을 맞이하게 되었다.
중국 메모리 산업의 두 거두를 비교할 때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기술적 성숙도와 재무적 실적 간의 입체적 역학 관계이다.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기술적 자립도와 선두권 추격 속도 면에서 YMTC가 CXMT보다 한 발 앞서 있다고 진단한다.D램은 수평 회로 패턴을 극도로 좁히는 미세 공정 경쟁이다. 미국 정부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및 18nm 이하 D램 장비의 중국 입고를 엄격히 차단함에 따라, CXMT는 선단 공정 진입 및 차세대 HBM 개발에서 물리적 벽에 부딪혀 있다.이에 반해 낸드플래시는 회로를 미세화하는 대신 위로 쌓아 올리는 '적층 기술'이 핵심이다. YMTC는 셀(Cell)과 페리(Peripheral) 회로를 서로 다른 웨이퍼에서 각각 만든 뒤 접합하는 독자 기술인 '엑스태킹(Xtacking)'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EUV 장비 없이도 200단 및 294단 낸드플래시 양산에 성공하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의 기술 격차를 단수 기준 한 자릿수로 줄였다.
기술적 완숙도에서는 YMTC가 앞서지만, 당장 벌어들이는 매출 외형과 당기순이익 등 재무적 수치에서는 D램 가격 폭등의 수혜를 입은 CXMT가 우세하다. AI 인프라 확충에 따른 글로벌 D램 수급난으로 범용 D램 단가가 상승하자, CXMT의 연간 매출은 80억 달러를 넘어서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YMTC는 미국 엔티티 리스트 제재 속에서 자국산 장비·부품을 대체하는 '싱화(Xinghuo) 프로젝트'와 차세대 낸드 R&D에 막대한 국부 자금을 재투자하고 있어, 매출 성장세 대비 손익분기점(BEP) 부근에서 내실을 다지는 단계에 있다.
YMTC의 태동은 2006년 우한시 정부가 설립한 파운드리 기업 '우한신신(XMC)'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모리 반도체 국산화를 갈망하던 중국 정부는 2016년 7월, 칭화유니그룹과 국가 빅펀드, 후베이성 지방정부 자금을 집결시켜 YMTC를 공식 출범시켰다. 설립 초기 해외 대기업의 기술 이전이 막히자 YMTC는 독자적 회로 구조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2018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플래시 메모리 서밋(FMS)에서 YMTC가 엑스태킹 아키텍처를 전격 발표했을 때, 글로벌 업계는 신생 기업의 일회성 홍보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불과 수년 만에 64단, 128단을 거쳐 200단 이상 고밀도 낸드를 안정적 수율로 수확하며 YMTC는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 실체적 위협으로 부상하였다. 미국 정부가 2022년 12월 YMTC를 엔티티 리스트에 올리고 128단 이상 낸드 장비의 중국 입고를 전면 차단했으나, YMTC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자국산 부품 대체율을 가파르게 끌어올렸다. 미국의 제재가 오히려 YMTC의 기술 자립화 속도를 촉진하는 역설을 낳은 셈이다.
YMTC의 급성장은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실체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YMTC는 중국 정부의 '자국산 부품 우선 채택' 정책을 등에 업고 스마트폰, PC, 데이터센터 서버용 eSSD 시장에서 한국산 낸드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글로벌 낸드 시장 점유율을 13%까지 늘리며 마이크론과 키옥시아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범용 낸드 가격 하락을 유도하는 한편, 한국 및 대만의 우수 반도체 엔지니어들을 유치하며 고부가가치 즉 enterprise SSD 시장 진입까지 시도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D램에서의 초격차 유지뿐만 아니라, 낸드플래시 영역에서 YMTC의 저가 물량 공세와 기술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다중고에 직면해 있다. YMTC의 증시 상장으로 투입될 거대한 자본력은 이 전쟁의 규모를 더욱 키울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차세대 낸드 공정의 원가 절감 기술을 확보하고, 고성능 AI 서버용 eSSD 등 프리미엄 제품 라인업에서 초격차를 더욱 벌려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거센 반도체 굴기 공세 속에서 기술적 절대 우위를 지켜내는 것만이 한국 반도체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