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불가능한 폭주" vs "건전한 조정"…엇갈린 월가 시각
빅테크 4400억 달러 투자에도 '수익성(ROI)' 의문 증폭
월가는 엔비디아(Nvidia)의 폭발적인 실적이 인공지능(AI) 주식 시장의 '거품 붕괴' 우려를 잠재워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빗나갔다. 엔비디아라는 강력한 구원투수조차 얼어붙기 시작한 투자 심리를 완전히 녹이지 못한 것이다.빅테크 4400억 달러 투자에도 '수익성(ROI)' 의문 증폭
23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금 월가는 AI 투자의 지속 가능성을 두고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 한쪽에서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밸류에이션(기업 가치)과 부채 급증을 경고하는 '회의론'이 비등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최근의 주가 하락을 추가 상승을 위한 '건전한 조정'으로 해석하는 '낙관론'이 맞서고 있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다. AI라는 거대한 흐름에 올라탄 투자자들은 앞으로 거시경제(매크로)의 불확실성, AI 혁명의 진행 속도, 그리고 극심한 변동성이라는 험난한 파도를 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AI 랠리의 균열, '투자 대비 수익(ROI)'이 관건
시장의 불확실성은 엔비디아 실적 발표 직후 주가 흐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지난 목요일, 엔비디아 주가는 실적 발표 직후 5% 이상 급등하며 AI 관련주들의 동반 상승을 이끄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하락 반전하며 결국 3.2% 떨어진 채 장을 마감했다. S&P 500과 나스닥 100 지수 역시 장 초반의 상승세를 지키지 못하고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는 시장이 단순한 실적 호조를 넘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아페이라 캐피털 어드바이저스(Apeira Capital Advisors)의 나탈리 황(Natalie Hwang) 매니징 파트너는 "초기에는 강력한 수요 확인에 안도하는 랠리가 있었지만, 투자자들은 곧바로 '전력 수급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마진율은 유지되는가', '투자 수익률(ROI)은 언제 나오는가'와 같은 다음 질문을 던지고 있다"며 "시장이 납득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하는 한 안도 랠리는 지속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시장의 반응은 엔비디아의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다. 엔비디아의 분기 실적은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샌즈 캐피털 매니지먼트(Sands Capital Management)의 다니엘 필링(Daniel Pilling)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분기 실적 자체는 예외적일 정도로 훌륭했고, 향후 매출 가이던스 역시 시장 컨센서스를 5%나 상회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엔비디아의 실적 호조가 이미 시장에 선반영되어 있었으며, 투자자들의 시선이 이제는 엔비디아를 넘어 AI 생태계 전반의 수익성 검증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빅테크의 '쩐의 전쟁', 4400억 달러 쏟아붓는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아마존(Amazon), 메타(Meta), 알파벳(Alphabet) 등 이른바 '빅테크 4인방'은 엔비디아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큰손들이다. 이들은 향후 12개월 동안 자본지출(CapEx)을 전년 대비 34% 늘려 총 4400억 달러(약 647조 원)를 쏟아부을 것으로 전망된다.
낙관론자들은 이러한 빅테크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가 AI 산업의 성장 엔진이 꺼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고 주장한다. SLC 매니지먼트의 덱 멀라키(Dec Mullarkey) 전무이사는 "오랜 강세장으로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지면서 AI 거품 붕괴에 대한 공포가 높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미 연준(Fed)의 금리 인하 가능성, 규제 완화, 활발해질 M&A 및 IPO 시장 등이 시장을 확장시킬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는 투자자들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들에게 최근의 주가 조정은 과열을 식히는 과정일 뿐이며, 강력한 산업 수요와 우호적인 규제 환경을 고려할 때 AI 사이클은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다.
반면 회의론자들은 빅테크 기업들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지만, 이것이 지속 가능한 구조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를 감당하기 위해 부채를 늘리기 시작하면서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AI 스타트업과 빅테크, 그리고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자금 조달 구조(circular financing)를 형성하고 있어, 한 기업의 부실이 전체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오라클·코어위브 등 주변부부터 무너지는 주가
실제로 엔비디아를 제외한 다른 반도체 및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이미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관련 지수는 11월 들어서만 11% 하락하며 2022년 이후 최악의 달을 기록할 기세다. AMD와 암 홀딩스(Arm Holdings) 같은 주요 기업들의 주가도 20% 넘게 미끄러졌다. 지난 2월 상장 이후 11월 12일까지 700% 가까이 폭등했던 샌디스크(Sandisk) 역시 최근 2주 사이 고점 대비 3분의 1 토막이 났다.
재무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업들의 타격은 더 크다. AI 데이터센터 기업 코어위브(CoreWeave)의 주가는 이달 들어서만 46% 폭락했고, 오라클(Oracle) 역시 24% 급락하며 2001년 이후 최대 월간 하락 폭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잭스 인베스트먼트 리서치(Zacks Investment Research)의 케빈 쿡(Kevin Cook) 수석 전략가는 "거품을 경계했던 이들의 말이 맞았을지 모른다"며 "오라클이나 코어위브 같은 기업들은 단지 이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빌려야 했고, 이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빅테크 기업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메타는 지난 10월 29일 실적 발표 이후 공격적인 지출 계획에 대한 우려로 주가가 21% 하락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같은 날 실적 발표 후 13% 떨어졌다. 챗GPT(ChatGPT) 개발사인 오픈AI(OpenAI)의 경우 막대한 현금 소진(cash burn) 속도와 높은 밸류에이션이 맞물려 거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재니 몽고메리 스콧(Janney Montgomery Scott)의 마크 루치니(Mark Luschini)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월가는 AI 거래가 다시 탄력을 받기 위해 명확한 수익성 지표를 원한다"며 "그 증거를 확인하기까지 한두 분기가 더 걸릴 수 있으며, 그때까지 AI 수익성 논란은 시장의 핵심 쟁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AI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조차 위태로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엔비디아의 실적은 당장의 급한 불은 껐을지 모르나, 시장의 근본적인 불안감인 '투자 대비 수익'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B. 라일리 웰스(B. Riley Wealth)의 아트 호건(Art Hogan) 수석 시장 전략가는 "거시경제에 대한 의문, AI 혁명의 진행 단계에 대한 이견, 암호화폐 시장의 붕괴 등 모든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AI 시장은 이제 '묻지마 투자'의 시기를 지나 '옥석 가리기'의 냉혹한 검증대에 올랐다. 화려한 미래 비전 대신 숫자로 증명된 수익성을 요구하는 월가의 청구서가 빅테크 기업들의 책상 위에 쌓이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제 '반 컵의 물'을 보며 그것이 반이나 남은 것인지, 아니면 반밖에 남지 않은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할 시점이다. 분명한 것은, 그 과정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험난하고 울퉁불퉁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