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블랙웰' 막고 구형 'H200' 허용 '이중 플레이'…젠슨 황 로비 통했나
美 강경파 "대중국 굴복" 반발에도…트럼프 팀, 희토류·매출 연계 '빅딜' 만지작
美 강경파 "대중국 굴복" 반발에도…트럼프 팀, 희토류·매출 연계 '빅딜' 만지작
이미지 확대보기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초기 검토' 단계지만, 파장은 만만치 않다.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삼았던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안보 자산조차 협상 테이블에 올려 실리를 챙기겠다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대중 강경파들은 즉각 "중국에 굴복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블랙웰'은 불허, 'H200'은 허용…교묘한 절충안
트럼프 팀이 들고나온 H200 카드는 고도의 정치적 셈법이 깔린 '절충안'이다. 현재 엔비디아의 기술력 정점에 있는 '블랙웰(Blackwell)' 시리즈의 중국행은 여전히 막혀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블랙웰이 구형 모델로 전락하는 1~2년 뒤에나 수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못 박았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 의제에서 블랙웰을 배제했다.
그러나 H200은 다르다. 최신 블랙웰이 아닌 이전 세대 '호퍼(Hopper)'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최신 기술 유출은 막는다"는 안보 명분을 지킬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동시에 H200은 현재 중국 수출용으로 성능을 강제로 낮춘 'H20'보다 월등한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을 자랑한다. 거대언어모델(LLM) 학습에 목마른 중국 빅테크 기업들에 H200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즉, 최상급 기술(Blackwell)은 통제하되, 중국이 절실히 원하는 고성능 연산 자원(H200)을 내주며 무역 협상의 레버리지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실리론'이 일정 부분 주효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황 CEO는 미국의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화웨이 등 중국 토종 기업을 키워주고 있다며 끈질기게 로비를 펼쳐왔다. 엔비디아 측은 "현재 규제는 거대 중국 시장을 외국 경쟁사에 헌납하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H200 수출 논의 소식에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장중 2% 가까이 반등했다.
"매출 15% 상납하라"…안보를 돈으로 환산
트럼프 행정부 내 '수출 허용파'의 논리는 명확하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언급한 '중독(addiction) 전략'이다. 중국에 미국의 '최고(best)'가 아닌 구형 제품을 팔아 미 기술 생태계에 중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 칩에 의존하게 만들어 독자적인 기술 자립 의지를 꺾는 것이 장기적으로 미국의 이익이라는 계산이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 팀의 비즈니스적 접근 방식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과거 미국은 중국에 H20 칩 선적을 승인하는 대가로 해당 매출의 15%를 가져가는 방안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이 방안은 안보 문제를 철저히 '돈'으로 환산하려는 트럼프식 사고를 보여준다. 당시 고위 관리들은 이를 중국산 희토류 접근권 확보를 위한 '거래'로 설명했다. 중국 상무부 역시 희토류 라이선스 승인이 미국의 수출 통제 완화에 따른 상응 조치였음을 시사하며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번 H200 논의 역시 중국으로부터 농산물 구매나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화 등 경제적 반대급부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워싱턴 매파 "대중국 굴복"…의회 입법 전쟁
그러나 백악관 안팎의 반발 기류가 심상치 않다. 공화당 내 대중국 강경파(China Hawks)들은 H200 수출이 중국의 AI 군사 기술 고도화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고 우려한다. 아무리 구형 아키텍처라 해도 H200은 현존하는 최고 수준의 AI 가속기 중 하나다. 이를 허용하는 것은 중국의 기술 굴기를 억제해 온 미국의 대전략을 스스로 허무는 '치명적 양보(concession)'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의회는 입법으로 제동을 걸 태세다. 현재 미 의회에서는 상무부가 제한된 칩의 수출 라이선스 발급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도록 강제하는 초당적 법안이 추진 중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트럼프 행정부의 H200 수출 논의는 원천 봉쇄된다. 백악관은 대통령의 협상 재량권을 위해 의회에 법안 거부를 요청하고 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반중 정서가 강해 통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中 "자립이냐 실리냐"…흔들리는 기술 패권
중국 역시 딜레마에 빠졌다. 베이징 당국은 미국의 제재 완화를 요구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엔비디아 지우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국 기업들에 H20 칩 대신 화웨이 등 국산 칩 사용을 종용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H200이 풀린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기업들은 성능이 떨어지는 국산 칩보다 검증된 엔비디아 칩을 선택할 공산이 크다. 이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목표를 크게 위협하는 요소다.
H200 수출 논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기술 정책이 '완벽한 봉쇄'에서 '전략적 거래'로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안보를 절대시하던 시대가 저물고, 첨단 기술조차 협상의 칩(Chip)으로 전락하는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H200을 둘러싼 워싱턴의 내전(內戰)은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