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투자 우선순위에 밀린 日…글로벌 반도체 수요 둔화도 '악재'
日 'AI 반도체 자립' 구상 차질…TSMC 빈자리, 라피더스가 채울까
日 'AI 반도체 자립' 구상 차질…TSMC 빈자리, 라피더스가 채울까

17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TSMC의 일본 내 두 번째 웨이퍼 팹(공장) 계획이 상당 기간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TSMC의 웨이저자(魏哲家) 회장은 지난 10월 16일 주주 설명회에서 "2공장 터 기초 정지 작업은 시작했다"고 확인하면서도, "양산 시작 시점은 궁극적으로 고객 수요와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혀 곧바로 공장을 짓지는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는 애초 계획이 크게 어그러졌음을 보여준다. 아사히 신문과 구마모토 TKU 방송 같은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TSMC는 본래 2025년 1분기 착공을 목표로 했으나 현재는 연내 언제 시작할지 정하지 못한 채 일정을 미뤘다. TSMC 쪽은 겉으로 현지 교통 혼잡과 사회 기반 시설 확충 문제를 지연 이유로 내세우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국제 반도체 수요 약화와 미중 갈등에 따른 관세 압박 속에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미국 공장 건설에 역량을 쏟아야 하는 회사의 복잡한 속사정이 담긴 결과로 풀이한다. 특히 2025년부터 본격으로 자금을 넣어야 하는 미국 애리조나 3나노 공장 투자가 일본보다 뒷순위로 밀렸다는 평가가 많다.
TSMC만 믿었는데…기로에 선 협력사들
예상치 못한 계획 연기는 반도체 특수를 기대하며 규슈에 둥지를 튼 수십 개 대만 기업들의 존립 기반을 흔들고 있다. 닛케이 보도를 보면, 2024년 TSMC를 따라 구마모토에 진출한 한 대만 장비 업체는 "마이크론의 주문을 공격적으로 따내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이러한 전략적 방향 선회는 비슷한 불확실성에 놓인 다른 많은 대만 협력사들 사이에서도 널리 확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마이크론의 히로시마 공장은 시기적절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마이크론은 일본 경제산업성(METI)의 보조금을 받아 인공지능(AI)용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위해 히로시마 공장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 사업은 AI용 D램과 차세대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산 역량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핵심 국가사업이다. 대만 협력사들은 TSMC 2공장 착공일이 정해지기를 무작정 기다리기보다, 마이크론 증설과 엮인 장비와 소재 공급 계약을 따내 당면한 재무 위기를 넘기고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다지겠다는 계산이다.
흔들리는 日 '반도체 자립' 야망
TSMC의 투자 지연은 일본 정부가 그리는 ‘AI 반도체 자립’ 구상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가동 중인 TSMC 구마모토 1공장 가동률마저 낮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정이 나빠지자 일부 대만 협력사들은 반도체 사업에만 매달리지 않고, 갖고 있던 자원을 써서 공유 사무실, 회의 시설, 창고 임대 사업에 뛰어드는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하며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TSMC 2공장은 32.1헥타르(약 9만 7000평) 터에 6나노와 7나노 첨단 공정과 함께 40나노급 구형 제품을 함께 만들도록 설계했다. TSMC의 일본 자회사 JASM에 대한 총투자액은 200억 미국 달러(약 3조 엔)를 웃돌 것으로 전망하며, 1, 2공장을 통해 모두 3400개의 직접 고용을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이 공장들에서는 최첨단 인공지능(AI)을 돌리는 데 꼭 필요한 2나노나 3나노급 최선단 반도체는 만들지 않을 예정이다. 애초 일본은 TSMC가 구마모토에 3공장을 더 지어 최선단 공정을 들여오기를 내심 바랐다. 그러나 TSMC는 이에 대해 확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TSMC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일본은 자국 내 최첨단 공정 기술 확보를 위해 라피더스에 거는 정책적 기대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