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 산하 그래프코어 13억 달러 투자…앤트로픽, 벵갈루루에 아시아 2호 거점
정부, 반도체 연구소 설립·인재 양성 총력…SK하이닉스 유치전도 활발
정부, 반도체 연구소 설립·인재 양성 총력…SK하이닉스 유치전도 활발

AI 분야의 선두 주자인 앤트로픽은 오는 2026년 초, 인도 남부의 IT 중심지 벵갈루루에 사무소를 열고 인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벵갈루루 사무소는 수개월 내 문을 열 도쿄 지사에 이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두 번째 거점이다. 앤트로픽은 인도를 비롯해 한국,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에서 시장 전문가를 찾으며 팀을 확대하고, 인도 현지에서는 대기업, 의료·교육 기관, 스타트업과 긴밀히 협력해 지역 맞춤형 AI 해결책을 개발할 계획이다.
특히 앤트로픽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는 "인도 AI 생태계가 세계 AI 기술 발전과 민주적 운영 체계 구축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며 깊은 신뢰를 보였다. 그는 다양한 인도 현지 언어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인도의 규제 안에서 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자주권 AI(sovereign AI)' 개발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혀, 단순한 시장 진출을 넘어선 장기 협력 관계 구축 의지를 내비쳤다.
이러한 흐름에 엔비디아의 강력한 경쟁사도 뛰어들었다.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산하 영국 반도체 기업 그래프코어는 인도에 10억 파운드(약 13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를 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 투자 계획에는 벵갈루루에 대규모 AI 연구 단지를 세우는 방안이 포함됐으며, 앞으로 10년 동안 500개에 가까운 반도체 일자리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우수한 IT 인재를 확보하고 거대한 내수 시장을 먼저 차지하려는 세계 기업들의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기술 자립' 속도…정부·지자체 전방위 지원
외국 자본 유치에만 머무르지 않고, 기술 자립을 위한 인도의 야심 찬 행보도 본격화하고 있다. 인도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스타트업 실리지움 서킷은 최근 갈륨비소(GaAs) 기반 5G 프런트엔드 모듈(FEM)의 모든 과정 설계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발표했다. 이번 성과는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아날로그와 RF 칩 설계 분야에서 인도가 자립을 향한 뜻깊은 첫발을 내디뎠음을 보여준다.
인도 정부는 체계적인 인재 양성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인도 연방 전자정보기술부 아슈위니 바이슈나우 장관은 인도 공과대학교(IIT) 부바네스와르 캠퍼스 안에 '나모 반도체 연구소' 설립을 최종 승인했다. 이 연구소는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 포장까지 모든 분야의 핵심 인재를 길러내 인도 반도체 생태계 기반을 한층 더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앙 정부뿐 아니라 지방 정부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정부는 세계적인 메모리 반도체 강자인 SK하이닉스의 생산 시설을 끌어오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SK하이닉스 측과 직접 만나 넓은 산업 용지 제공, 신속한 인허가 절차 보장, 항만·공항과의 뛰어난 접근성 등을 담은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드라프라데시주의 이런 행보는 SK하이닉스를 핵심 기업으로 삼아 인도 동부를 첨단 반도체 제조 중심지로 키우려는 큰 그림의 일부다.
제조업 전반으로 퍼지는 'AI 효과'…현지 기업도 흑자 전환
AI 기술을 전통 산업에 접목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인도 태양광 제조 스타트업 파할 솔라는 1억7000만 루피(약 27억 원)를 투자해 AI 기반 스마트 공장을 확장, 생산 능력을 기존보다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파할 솔라의 사례는 인도가 단순히 첨단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AI를 자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힘으로 쓰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인도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새로운 AI 중심지로 확실히 자리 잡고 있다. 풍부하고 우수한 현지 인재, 역동적인 스타트업 생태계, 그리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아우르는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힘을 합쳐 성장을 이끌고 있다. 앤트로픽과 그래프코어 같은 세계 AI·반도체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는 인도 미래 디지털 경제를 여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