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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헤지펀드, 주식시장과 동조화 심화…'분산투자' 역할 상실 위기

이벤트 드리븐 펀드, S&P 500과 상관관계 0.99…평균치 크게 웃돌아
AI 버블 우려 속 '안전판' 기능 상실…시장 조정 시 동반 추락 경고
사진=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전통적인 자산 시장의 변동성에 대비한 분산 투자 수단으로 주목받아 온 헤지펀드가 주식 시장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동조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시장 급락 때 손실을 방어하기는커녕 동반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면서, 헤지펀드의 근본적인 역할론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미 경제방송 CNBC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연기금, 보험사부터 패밀리 오피스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기관 투자자들은 시장의 하방 위험을 막고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핵심 자산으로 헤지펀드를 활용해왔으나, 그 존재 이유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우려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 주도 속에 과열 양상을 보이는 주식 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S&P 500 지수는 AI 거품 경고가 잇따르며 지난주 3거래일 연속 하락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서섹스 파트너스의 공동 창립자 패트릭 갈리는 "사람들은 현재 시장 상황에 불안해하고 있다. 시장은 여러 지표상 거품이 낀 소수의 AI 주식이 이끌어 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투자자들은 자신의 헤지펀드가 분산 투자 효과를 주기를 기대하지만, 만약 시장이 조정을 받고 헤지펀드도 비슷하게 조정을 받는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라진 차별성…데이터로 드러난 동조화


글로벌 지수 제공업체 피보탈패스의 분석은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수치로 증명한다. 최신 보고서를 보면 롱/숏 주식 선정, 이벤트 드리븐, 멀티 전략 등 다수의 주요 헤지펀드 전략이 S&P 500 지수와 '역사적으로 높은'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특히 기업의 인수합병(M&A) 이벤트에 투자하는 이벤트 드리븐 펀드는 12개월 이동 평균 기준으로 S&P 500 지수와 0.99의 상관관계를 기록했다. 이는 사실상 주식 시장과 똑같이 움직인다는 뜻으로, 과거 평균인 0.67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존 캐플리스 피보탈패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까지 M&A 활동이 많지 않았고, 이벤트 드리븐 같은 전략은 합병 차익거래에 훨씬 더 의존한다"며 "이 때문에 합병 차익거래나 부실자산 투자 기회에서 오는 독자적인 수익 구조를 활용하기 어려웠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물론 모든 헤지펀드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거시 경제와 지정학 흐름에 투자하는 글로벌 매크로 펀드와 시장의 추세를 따르는 매니지드 퓨처스 펀드는 여전히 낮은 상관관계를 유지하며 분산 투자 수단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매크로 펀드의 주식 시장 상관관계는 0.11에 불과했다. 캐플리스 CEO는 "글로벌 매크로와 매니지드 퓨처스 펀드야말로 진정한 분산 투자 전략"이라며 "이들은 시장이 하락할 때 수익을 내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S&P 500 지수가 19% 손실을 기록했던 2022년, 추세 추종 펀드들은 오히려 20.1%라는 놀라운 한 해 수익률을 기록하며 분산 투자의 가치를 입증했다. 하지만 올해는 4월 관세 문제로 불거진 매도세와 이어진 반등 장세에 추세가 흔들리며 9월 25일 기준 3.4% 손실을 보고 있다.

달라진 투자 지형도…'옥석 가리기' 중요성 커져


헤지펀드의 주식 시장 동조화 현상은 기관 투자자를 넘어 소매 투자자에게까지 헤지펀드 접근성이 확대되고, ETF 형식의 전략 출시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는 추세와 맞물려 더욱 눈길을 끈다. 세계 최대 상장 헤지펀드 운용사인 맨 그룹은 이달 초 일부 전략을 상장지수펀드(ETF) 형태로 출시해 개인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높일 계획을 밝혔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헤지펀드 투자 비중을 역대 최고 수준인 5% 이상으로 늘리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헤지펀드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헤지펀드 운용 자산은 약 4조 7000억 달러(약 6589조 원)에 이른다.

지난 한 해 S&P 500 지수가 15.6% 오르는 동안 많은 헤지펀드들이 시장 상승 흐름에 올라타 준수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업계의 높은 수수료를 정당화하는 근거인 '시장을 이기는 초과 수익(알파)' 창출 기회는 제한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캐플리스 CEO는 현 상황을 "반드시 '적신호'는 아니지만, 분명한 '황색 신호'이며 투자자들이 더 알아봐야 할 사안"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헤지펀드 투자의 목적인 위험 줄이기, 포트폴리오 다각화, 혹은 초과 수익(알파) 창출 가운데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하고 엄격한 운용사 선정과 실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르주 울 티단 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2025년 4분기 변동성 확대를 예상하며, 시장 방향성 예측은 어렵지만 단기 조정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변동성이 커지는 시장은 헤지펀드에 독립적인 수익원 마련이라는 큰 과제를 던지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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