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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프리포트, 그라스버그 광산 불가항력 선언…구리값 1년 만에 최고

인도네시아 광산 흙탕물 유입 사고로 2명 사망·5명 실종…2026년까지 생산 차질 불가피
AI·에너지 전환발 수요 폭증에 공급난 심화…전문가들 '구조적 공급 부족' 경고
세계 2위 구리 광산인 인도네시아 그라스버그 광산에서 대규모 흙탕물 유입 사고가 발생해 운영사인 프리포트-맥모란이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됐으며, 장기 생산 차질 우려에 국제 구리 가격은 1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2위 구리 광산인 인도네시아 그라스버그 광산에서 대규모 흙탕물 유입 사고가 발생해 운영사인 프리포트-맥모란이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됐으며, 장기 생산 차질 우려에 국제 구리 가격은 1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사진=로이터

세계 2위 구리 광산이 멈춰서면서 국제 구리 시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청정에너지 전환과 인공지능(AI) 붐으로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터진 초대형 악재에 구리 가격은 1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며 공급망 충격이 현실이 됐다.

24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광산업체 프리포트-맥모란은 성명을 내어 인도네시아 파푸아주에 있는 그라스버그 구리·금 광산 운영과 관련해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8일,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의 3%를 책임지는 이 광산에서 대규모 흙탕물 유입 사고가 나 직원 2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되는 심각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고는 지하 채광 구역인 '그라스버그 블록 케이브'(Grasberg Block Cave)에서 약 80만 톤의 진흙이 밀려들어와 여러 작업 구간을 덮치면서 일어났으며, 현재 실종자 수색과 안전 점검 때문에 광산 전체 생산 활동이 멈췄다. 불가항력 선언은 천재지변처럼 통제할 수 없는 탓에 계약을 이행할 수 없음을 알리는 조처로, 프리포트가 기존에 체결한 구리 공급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수 있음을 뜻한다.

특히 이번 사고로 프리포트 인도네시아(PTFI)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는 핵심 광구가 직접 타격을 입으면서 충격은 길어질 전망이다. 프리포트 쪽은 "2025년 4분기와 2026년 내내 해당 광구에서 의미 있는 구리와 금 생산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2026년 전체 생산량 역시 기존 목표보다 35% 줄어들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회사는 2027년부터 단계적인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완전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3개월물 가격은 톤당 1만 300달러를 웃돌며 급등했다. 이는 지난해 5월 기록했던 사상 최고가(톤당 1만 1104.50달러)에 가까운 수준이다. 반면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프리포트-맥모란의 주가는 하루 만에 10~17%가량 폭락하며 5년 만에 최악의 날을 맞았다.

가뜩이나 살얼음판 걷던 구리 시장

이번 그라스버그 사태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유독 큰 이유는 이미 세계 구리 공급망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청정에너지 전환에 꼭 필요한 전기차, 풍력 터빈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막대한 양의 구리가 쓰이면서 수요는 폭발하듯 늘어왔다. 하지만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올해 들어 구리 공급망의 불안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났다. 지난 5월에는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아이반호 마인스의 광산이 지진으로 침수 피해를 봤고, 6월에는 칠레의 텍 리소시스 소유 광산 두 곳이 항만과 공장 문제로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7월에는 세계 최대 구리 생산업체인 칠레 국영 코델코 소유 광산에서 사망 사고가 나 일주일 넘게 조업이 멈추기도 했다. 이처럼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며 공급 불안이 쌓인 판에, 세계 2위 규모의 광산마저 가동 중단 위기에 처하자 시장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고질적 투자 부족이 부른 공급 대란


전문가들은 2023년에서 2024년 사이 공급 과잉이던 구리 시장이 2025년 들어 공급 부족 구조로 바뀌었으며, 이번 사고가 중장기 가격 상승을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시장 분석가들은 이번 사태가 구리 가격을 새로운 국면으로 밀어 올릴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BMO 캐피털 마켓의 헬렌 에이머스 애널리스트는 "규모 면에서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며 "구리 수급이 이미 상당히 빠듯한 때에 발생했다.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우리가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새로운 가격 체제로 우리를 이끌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올해 전 세계 정련 구리 시장이 세계 재고 감소세와 맞물려 약 30만 톤의 공급 부족을 겪을 것으로 추정한다.

TD 증권의 바트 멜렉 세계 원자재 전략 총괄은 "이 사태가 얼마나 오래 가느냐에 따라 공급 부족분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려면 비축된 구리 재고를 써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 같은 주요 투자은행들은 이미 구리 가격이 톤당 1만 3000달러에서 1만 50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런 공급 불안의 근본 원인으로 지난 10년간 이어진 구리 광산 투자 부족을 꼽는다. 과거 무리한 인수합병의 후유증으로 막대한 손실을 경험한 광산업체들이 신규 광산 개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할 생산 능력을 제때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라스버그 광산의 조업 차질이 길어지면, 구리 정광(반가공 구리)을 수입해 정련 구리를 생산하는 제련업계의 원료 부족은 극심해질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단일 광산의 사고를 넘어,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AI 산업의 핵심 원자재인 구리의 세계 수급 자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건이다. 시장에서는 그라스버그 광산의 장기 공급 차질과 재고 감소, 그에 따른 가격 변동성 확대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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