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의회 폐쇄 승인 후 브렌트유 5% 급등...중국·인도가 주요 타격권
유가 110달러 전망 속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중앙은행 정책 전환 압박
유가 110달러 전망 속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중앙은행 정책 전환 압박

이란 의회가 미국의 핵시설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승인한 후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국제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가격은 23일 장 초반 배럴당 81달러 이상으로 전주 종가 대비 5% 이상 상승했다. 이후 상승분을 일부 반납했지만, 여전히 8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와 가스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수로다. 석유 메이저 셸(Shell)의 와엘 사완 CEO는 지난주 일본 에너지 서밋에서 이 해협을 "세계의 에너지가 흐르는 동맥"이라고 표현하며 "어떤 이유로든 그 동맥이 막히면 세계 무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라이스타드 에너지에 따르면, 아시아는 해협을 통과하는 하루 약 1500만 배럴의 원유 중 80%를 공급받고 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이 석유의 절반 이상이 중국과 인도로 향했으며, 한국과 일본도 해협 통과 원유의 24%를 수입하는 주요 수취국이다. 싱가포르,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베트남도 상당한 물량을 이 경로를 통해 수입하고 있다.
라이스타드 애널리스트들은 "아시아는 원유 수출 부족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이전에는 물량이 러시아산, 나이지리아산, 베네수엘라산, 앙골라산, 미국산 원유로 대체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들 국가의 복잡성으로 인해 대안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석유 제품의 경우, 하루 약 500만 배럴이 해협을 통과하며, 아시아가 전체 유량의 약 60%를 차지한다. LNG 부문에서도 아시아의 의존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원자재 컨설턴트 Kpler 데이터에 따르면 아시아는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LNG의 80% 이상을 공급받고 있다.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가 이 경로를 통해 초저온 연료를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으며, 중국과 인도가 전체 유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목적지다. 한국, 일본, 파키스탄 등도 상당량의 LNG를 이 경로를 통해 공급받고 있다.
이란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호르무즈 해협 폐쇄를 위협했지만 실제로 완전히 폐쇄한 적은 없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유조선 전쟁이 벌어졌지만, 해협 자체가 막히지는 않았다.
분석가들은 전면 봉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유라시아 그룹 애널리스트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다"며 그 가능성을 20%로 평가했다. "이란이 자국의 에너지 수출 시설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 에너지 목표를 향해 긴장을 고조시킬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한 가지 고려 사항은 이란산 석유의 최대 구매자인 중국을 화나게 할 위험이다. 노무라 연구소의 다카히데 키우치 수석 경제학자는 "중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서방의 제재로부터 이란을 보호하는 중요한 파트너"라며 "해협 폐쇄는 중국에 피해를 입힐 것이며, 이 때문에 해협 폐쇄의 장애물은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해협에 큰 차질이 생길 경우 파급효과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흐름이 한 달 동안 50% 하락한 후 11개월 동안 10% 하락 상태를 유지한다면 브렌트유는 잠시 동안 약 110달러의 최고점까지 뛰어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천연가스 가격도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삭스는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2022년 유럽 에너지 위기 당시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으며, 이는 높은 가격으로 인해 대규모 수요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과 아시아 가스 가격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스테판 앵그릭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아시아의 인플레이션 전망에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6월 초부터 상승하고 있어 "이 지역 전체의 인플레이션이 더 지속되거나 심지어 다시 가속화될 수 있는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 한국, 대만과 같은 고소득 국가들은 에너지와 식량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감안할 때 "특히 노출되어 있다"고 앵그릭은 지적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수입 청구서 증가로 이어져 "양국의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락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국 통화가 약화되고 인플레이션이 부추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면 아시아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인하를 일시 중지하거나 금리 인상을 재개하는 등 정책 전환을 검토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