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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트럼프와 협상 앞두고 '반독점 조사' 시작...미 기술기업 압박 전략

구글·엔비디아 조사 착수...애플·브로드컴도 타깃
美 기술기업 견제 나선 베이징..."협상 카드 확보 목적"
애플 로고.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애플 로고. 사진=로이터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앞두고 구글과 엔비디아를 상대로 반독점 조사를 시작했다.
10일(현지시각) 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애플과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 소프트웨어 기업 시놉시스도 조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기술기업을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강력한 '카드'를 확보하기 위해 기술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베이징 전략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 등에서 활용할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상품에 부과한 관세도 그중 하나다.

톰 넌리스트(Tom Nunlist) 트리비움 차이나 컨설팅 기술정책 분석가는 "중국은 협상 테이블에서 사용할 칩을 모으고 있다"고 비유하며, "협상을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고 싶어하며 협상에서 사용할 카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위험을 수반한다고 WSJ는 지적한다. 미국 기업들은 트럼프의 첫 임기 때보다 중국을 위해 나서는 것을 꺼리고 있으며, 이러한 위협은 중국이 원하는 결과와는 달리 중국에 대한 투자를 억제함으로써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정부는 2020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를 도입하며 미국의 규제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이 리스트는 미국이 화웨이 등의 기업을 거래 제한 리스트에 올린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2022년에는 반독점법을 개정하며 기업 간 합병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규제 수단을 활용해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기업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그와 나란히 앉았던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애플 CEO 팀 쿡(Tim Cook) 등이 이에 해당한다.

중국은 미국이 지난 4일 중국 상품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직후, 구글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시작했다. 중국 정부의 반독점 조사는 지난 2019년 미국이 화웨이에 가한 제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2019년 화웨이가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Android OS) 사용을 제한하도록 조치했다. 이로 인해 화웨이는 구글 앱 및 주요 소프트웨어 접근권을 잃었으며, 자체 OS 개발을 강요받았다.
중국의 또 다른 맞대응 움직임은 지난 12월에 일어났다. 엔비디아에 대한 조사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규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4년 12월 중국에 대한 최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불과 일주일 후, 중국 정부는 엔비디아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개시했다. 조사 대상은 엔비디아의 2019년 인수합병 거래로, 중국 당국은 엔비디아가 특정 중국 기업을 차별했는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현재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로 인해 엔비디아는 2022년 이후 중국에 최첨단 AI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애플 역시 중국 당국의 집중 견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텐센트와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는 애플이 앱스토어(App Store)에서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이 최근 애플의 정책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중국 당국은 애플의 결제 시스템이 경쟁을 저해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애플의 앱스토어 수수료 구조가 반독점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중국은 애플을 미국과의 협상에서 쓸 수 있는 또 다른 카드로 보고 있다.

기업 인수합병(M&A)도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 변수 중 하나다. 2018년, 퀄컴은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XP 반도체를 인수하려 했으나, 중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거래가 무산됐다. 2022년 5월, 브로드컴의 VM웨어(VMware) 610억 달러 인수 건도 중국의 반대로 무산될 뻔했다. 하지만 2023년 11월, 바이든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이후 중국이 막판에 승인을 내줬다.

중국 정부는 대형 인수합병 승인 시 '조건부 승인'을 내리는 방식으로 기업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인텔과 AMD도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에서 조건부 승인을 받은 바 있다.

앤젤라 장(Angela Zhang) 남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중국은 엄격한 조건을 시행함으로써 기업에 압력을 가하고 불이행 시 처벌을 부과할 수 있다"면서 "중국은 미국 기업, 특히 핵심 구성 요소에 의존하는 엔비디아와 같은 핵심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제재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칩 설계 소프트웨어 공급업체인 시놉시스가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회사 앤시스(Ansys)를 350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제안도 중국 정부가 승인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국은 시놉시스가 미국 수출통제를 준수하여 중국의 고급 칩 설계 소프트웨어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을 때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중국 반독점 규제 기관은 시놉시스에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토를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시놉시스 대변인은 중국의 검토 결과가 유리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2025년 상반기에 거래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국가안보는 중국이 미국 기업을 억제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도구이다. 2023년 중국은 사이버 보안 조사에서 국가안보 위험이 확인되었다고 밝힌 후 주요 중국 기업이 미국 칩 제조업체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서 구매하는 것을 금지했다. 당시 상무부는 제한에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의 이번 반독점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 관세 부과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략적 대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강경한 대중 무역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당국은 구글, 엔비디아, 애플 등의 기업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 협상을 어떻게 진행할지, 이에 대해 중국이 어떤 대응 전략을 펼칠지 주목된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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