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쟁력만이 보호무역주의 물결을 넘는 길
화석연료 회귀는 中견제와 美 제조업 부활 목적
韓 경쟁력 우위 이용한 협상카드 마련해야
고환율 문제 삼아 제재 내릴 가능성 높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각) 취임사를 통해 언급한 보편 관세 등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돌파하려면 기업의 근원적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조언했다. 이들은 한국이 보편 관세 부과 대상에서 일단 빠지며 번 시간 동안 트럼프 행정부와 주고받을 협상 카드를 찾아나가면서 관세 대신 고환율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에 우선 대비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화석연료 회귀는 中견제와 美 제조업 부활 목적
韓 경쟁력 우위 이용한 협상카드 마련해야
고환율 문제 삼아 제재 내릴 가능성 높아
글로벌이코노믹이 21일 대미 통상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트럼프 2.0시대'를 맞는 한국 기업의 통상 전략과 과제에 대해 전화 인터뷰를 한 결과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몰고올 전 세계 보호무역주의 물결에 대비해 한국 기업들의 제조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술력이 우수하면 높아지는 무역 장벽에도 각국의 환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폐기한 것은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세계 제조업을 미국 중심으로 두겠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무역과 관세 문제를 양국 간 이슈가 아닌 전 세계 보편적 이슈로 여긴다”며 “전 세계 국가들이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국 시장 보호를 위해 뭐든지 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기존보다 기업 경쟁력이 더 튼튼해야 높아진 수출 장벽을 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국가들은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집중한 결과 중국의 에너지 가격 경쟁력에 밀렸다”며 “전통 제조업부터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까지 저렴한 에너지원을 확보하지 못해 경쟁력 면에서 어려움에 처한 만큼 한국도 제조업에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현실적 관점에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웃 국가인 캐나다와 멕시코 등과 달리 한국에 당장 보편 관세를 매기지 않은 것을 두고 '시간을 벌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캐나다와 멕시코를 대상으로만 관세율을 최대 25%로 올렸다. 이처럼 벌어놓은 시간을 이용해 한국이 협상 카드를 만들어 트럼프 행정부와 주고받을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발 관세 이슈가 생각보다 천천히 올라올 가능성이 커졌다”며 “그만큼 한국이 적응하고 대책을 마련할 시간을 확보한 만큼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국의 기술과 지정학적 입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대미 협상에서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왔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화석연료와 내연기관 자동차로 회귀한다는 메시지는 결국 전기차 시장을 잠식한 중국에 자동차 산업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라며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이 쉽게 통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과 밀착하지 않는 식으로 관계 설정을 명확히 한 뒤 중국을 공급망에서 서서히 배제하는 ‘페이드아웃’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현재 미국은 ‘초한전’을 내세워 파나마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필요로 한다”며 “한국도 이에 부응하기 위해 조선과 반도체 등 핵심 경쟁력을 바탕으로 협상 카드를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환율을 문제 삼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난달 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화 가치가 낮아지면서 대미 무역적자 확대가 우려되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 조사국은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 불확실성과 경제 심리 위축 때문에 올해 성장률이 소비 등 내수를 중심으로 약 0.2%포인트(p)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내수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크게 줄어들고 그만큼 지난해 4분기와 올해 경제성장률도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하고 있다.
허 교수는 “미국의 경제 펀더멘털이 좋은 데다 인플레이션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쉽게 내리지 않아 당분간 한국의 고환율 현상은 이어질 것”이라며 “미국이 무역적자를 이유로 한국에 관세 부과 등 강한 조치를 내리면 오히려 환율이 튈 수 있어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승현·나연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rn72bene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