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업계의 대표주자인 혼다와 닛산이 폭스콘의 적대적 M&A 위협을 막기 위해 합병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18일(현지시각) 일본의 경제신문 닛케이 아시아는 양사가 대만 폭스콘의 닛산 지분 인수 움직임에 대응해 합병 협상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폭스콘은 최근 르노가 신탁은행에 예치한 닛산 주식 인수를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닛산 주식의 22.8%는 신탁은행이 보유하고 있다. 폭스콘은 이 지분 확보를 통해 닛산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폭스콘의 전기차 사업 최고전략책임자(CSO)인 준 세키가 과거 닛산의 고위 임원 출신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세키는 2023년 폭스콘 합류 후 세계 전기차 시장 점유율 40% 달성이라는 야심 찬 목표를 추진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닛산과 혼다 모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지난 8월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혼다는 "닛산이 폭스콘과 손잡을 경우, 파트너십을 파기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닛산 입장에서도 폭스콘의 경영 참여는 큰 부담이다. 이미 작년 11월 글로벌 인력 9000명 감축과 생산 능력 20% 축소를 결정한 상황에서, 폭스콘 경영 참여시 더욱 과감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진 것은 지난달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닛산 주식 매입이 확인되면서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 인상 위협까지 더해지며 닛산 경영진의 압박은 가중됐다.
이에 따라, 닛산과 혼다는 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로 폭스콘의 위협에 대응하기로 했다. 미쓰비시자동차까지 포함할 경우, 연간 생산량 800만 대를 넘어서는 세계 3위권 자동차 그룹이 탄생하게 된다.
한편, 폭스콘은 2019년 전기차 사업 진출을 선언한 이후 공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지난 9월에는 자회사 샤프의 기술을 활용한 자체 전기차 개발 계획도 발표했다. 업계는 폭스콘이 세계 최초로 전기차 양산에 성공한 닛산의 기술력과 글로벌 판매망 확보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혼다와 닛산의 합병 추진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대대적인 재편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전통 자동차 업계의 강자들이 IT 기업들의 공세에 맞서 생존을 위한 몸집 불리기에 나서면서, 자동차 산업의 판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IT 제조기업인 폭스콘의 자동차 산업 진출 시도가 전통 완성차 업체들의 합종연횡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향후 더 많은 IT 기업들의 자동차 산업 진출이 예상된다고 분석한다.
"애플, 구글과 같은 거대 IT 기업들의 자동차 산업 진출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며 "폭스콘의 닛산 인수 시도는 이러한 흐름이 본격화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자동차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특히, 한국 자동차 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IT 기업들의 공세에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자동차 업계가 기술 혁신 가속화와 전략적 제휴 강화, 산업 경계 붕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단독으로는 막대한 개발 비용과 시장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지적했다.
한 글로벌 컨설팅사 관계자는 "현대차그룹도 글로벌 IT 기업들의 잠재적 M&A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선제 대응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혼다-닛산의 합병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질서를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연간 생산량 800만 대 규모의 메가 그룹 탄생은 다른 완성차 업체들의 추가적인 합병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기술 혁신과 산업 재편이라는 두 가지 큰 변화의 물결이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며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만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