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오픈 베타 형태로 서비스가 시작된 '검은사막'은 출시 전부터 좋게 말하면 장인 정신, 나쁘게 말하면 '변태적'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가진 게임이었다. 당시는 물론 최근 기준으로도 고품질인 그래픽으로 MMORPG를 구현했고, 이는 '타협하지 않는 게임 개발사'라는 펄어비스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지스타 2024에서 펄어비스는 오랜만에 '붉은사막' 시연 부스로 소비자들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다시금 자신들이 '절대 타협하지 않는', '변태적인 수준의 장인 정신을 가진' 게임 개발사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붉은사막 시연 부스는 '플레이'로 시작하지 않고 대신 약 10분 길이의 가이드 영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영상 초장부터 시연자는 그 이유를 알게된다. 약공과 강공에 발차기, 활까지 있는 공격 요소는 괜찮다. 구르기와 방어, 방어와 연동되는 반격이 여러 종류인 것까지도 익힐 수 있다. 공격 입력 순서에 따른 콤보의 존재. 여기까지도 납득 가능 범위다.
강공과 약공을 동시에 누르면 나가는 특수 베기가 나오는 시점부터 불안감이 느껴진다. 강력한 전진성 기술 '찌르기'를 넘어 일종의 레슬링 기술 '넥 브레이커', 무협에서 볼법한 손바닥 치기 '팜 어택'까지 세세하게 구현됐다. 태양빛을 쬐어 적의 눈을 잠깐 멀게하는 '잡기술'까지 별도 커맨드로 구현된 것은 제대로 본 게 맞는 건지 본 기자의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대전 격투 게임 매뉴얼을 연상시키는 커맨드 리스트를 넘어서면 시연에서 만날 수 있는 각 보스 별 '기믹' 설명이 이어진다. 보스의 특정 패턴마다 앞서 언급한 특별한 기술을 적재적소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적을 다수 소환하는 보스는 '폭발 화살'이란 장비까지 필요하다. '완다와 거상'을 연상시키는 파쿠르에 와이어 액션까지 필요한 보스 '여왕 돌 멘 게'의 공략 가이드는 함께 보는 이들에게 지나치게 난이도가 높은 게 아닌가 하는 염려를 갖게 했다.
고난이도 액션 RPG라고 하면 흔히 '소울라이크'란 장르가 거론된다. 붉은사막 시연 버전의 난이도는 매우 높지만 '소울라이크'가 추구하는 난이도와는 다르다. 조작감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고 '억까(억지로 깐다)'라고 느껴질 정도의 전투 외적인 악의적 디자인도 찾기 어렵다. 심지어 죽은 자리에서 즉시 부활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붉은사막은 '매운 맛'이 강렬하게 느껴질 정도로 난해하다. 수많은 커맨드를 외우는 것은 시작점이요, 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않으면 보스에게 즉각 '참교육'을 당하고 만다. 여기에 소울라이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박, 엇박을 섞는 공격까지 더해진다. '꼼수'로 이기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개발진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최근 게임계의 화두는 단연 '캐주얼화'일 것이다. 게임 이용자층은 점점 다변화되고, 모바일 플랫폼의 대중화로 쉬운 게임을 찾는 인구가 늘고 있다. 범세계적 경기 침체로 'AAA급 게임' 개발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난이도와 진입 장벽이 높기로 소문 난 게임 시리즈들도 대중적 접근을 위해 '타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게임업계의 흐름 속에 펄어비스는 당당하게 '역행'을 선언했다. 마니아층이 확고하게 존재하는 장르를 넘어 여러 장르에서 영감을 얻은 '고난이도 요소'를 빽빽히 채워넣었다. 갈대 밭에서 칼을 휘두르는 방향마다 잘려 흩날리는 이파리들, 시네마틱 컷씬과 인게임 그래픽이 '심리스'로 이어지는 연출 등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완성도는 덤이다.
펄어비스의 이름은 '심해에서 캐내는 진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시뻘건 매운 맛이 느껴지는 '붉은사막'을 앞세워 펄어비스는 다른 게임사들이 가지 않는 심해에 과감히 몸을 던졌다. 그들이 이 어려운 길의 끝에서 'AAA급 게임의 새로운 지평'이라는 진주를 캐내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