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게임업계의 화두라고 한다면 단연 '소비자의 권익 보호'가 꼽힌다. 게임계 핵심 비즈니스 모델(BM)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게임법(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 3월 시행됐다. 게이머 권익 침해 의혹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게임사도 여럿 존재한다.
넥슨은 이렇듯 '게임 소비자 권익'이 중시되는 가운데 게임을 넘어 '초대형 축구쇼'를 여는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한해 최고의 축구 선수가 받는다는 '발롱도르' 수상자만 6명, 축구 팬들의 추억 속 아이콘인 티에리 앙리, 디디에 드록바, 안드레아 피를로, 카를레스 푸욜 등 입이 떡 벌어지는 '빅네임'들이 대거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찾아 팬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콘텐츠 기업이 주력 사업과 다른 분야의 행사를 선보이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기존 팬들에게 "우리가 쓴 돈 낭비하지 마라"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넥슨 아이콘 매치는 달랐다. "내가 쓴 돈 덕분에 드록바 형이 한국에 왔다", "넥슨이 진짜 큰 일 해냈다"는 등 호평 일색이었다. 일각에선 "대한축구협회보다 넥슨이 낫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아이콘 매치의 성공 원인은 넥슨의 확실한 투자와 섭외, 철저한 이벤트 준비 등도 있겠지만, 그 기저에는 2012년부터 축구 게임 'FC 온라인' 시리즈를 서비스해 온 역사가 있다. FC 온라인은 현재 국내를 포함 아시아권에서 가장 대중적인 축구 게임 중 하나로 실제 스포츠 팬 상당수가 교차 이용하는 게임으로 손꼽힌다.
넥슨은 이러한 이용자층 성향을 토대로 아이콘 매치 이전에도 게임과 현실 스포츠를 연결하는 오프라인 행사를 꾸준히 열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K리그), 한국e스포츠협회(KeSPA), SOOP과 더불어 2020년부터 'eK리그'를 진행했다. 2022년에는 유소년 축구를 후원하는 '그라운드 엔' 사업을 출범하는 등 현실 스포츠 저변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옛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 즉 말과 글을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학문의 3요소로 '로고스(논리)', 파토스(감성)', '에토스(신뢰성)'을 들었다. 에토스는 수사를 하는 이의 언어와 외형적 매력이나 카리스마와 더불어 공동체에서 기존에 쌓아온 평판에 의해 좌우된다.
넥슨의 아이콘 매치가 게이머들에게 '기분 좋은 행사'로 받아들여진 것은 다시 말해 팬들이 '설득력 있는' 행사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넥슨이 장기간 지속해온 '게임과 현실 스포츠의 연계'를 위한 행보가 신뢰감을 주고 좋은 평판을 형성해온, 즉 '에토스'를 쌓아온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마케팅에 있어 '인바운드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있다. 소위 '영업'이나 광고 등 직접적인 '아웃바운드 마케팅'과 달리 소셜 미디어·유튜브 콘텐츠 마케팅이나 바이럴 마케팅 등 같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노출해 소비자가 직접, 자발적으로 제품을 찾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에게 단순히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기분 좋게' 제품을 소비할 수 있게 하느냐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게임업계인들 사이에서 '자발적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으로 흔히 '적극적 재투자'가 이상향으로 거론된다. 소비자들이 돈을 내는 만큼 확실한 콘텐츠 업데이트와 팬들이 좋아할 만한 온·오프라인 이벤트를 통해 '돈을 낼 이유가 있다'고 체감하게 해 일반적인 이용자를 충성도 높은 '팬'으로 만드는 것이 '재투자'의 원리다.
말로 표현하면 간단해보이는 '재투자'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게임사도 기업인 만큼 이윤을 추구할 수 밖에 없고, 게임에서 번 돈 모두를 다시 소비자를 위해 투자한다는 의사 결정은 불가능에 가깝다. 신작 개발 비용이나 부서 간 형평성 문제, 직원들의 전환 배치나 이직 등의 문제는 덤이다. 한 게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적극적 재투자는 '성공 방정식'이 아닌 '이상향'으로만 언급되는 것이다.
넥슨은 아이콘 매치를 통해 게이머들에게 '기분 좋은 소비'가 무엇인지 각인하는 재투자 전략을 효과적으로 선보였다. 나아가 스포츠 팬들에게 '세상에 다시 보기 힘든 축구 행사'를 선보였다는 브랜딩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창사 30주년을 앞둔 가운데 '게임 마케팅의 이상향'에 독특한 방식으로 다다른 만큼 더욱 뜻깊은 사례로 기억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