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부통령 후보로 J. D. 밴스 상원의원(오하이오주)을 지명하자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밴스 의원의 ‘포퓰리스트’ 정치 노선이 기업 이익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미 경제 전문지 마켓워치는 16일(현지 시간) “미 재계가 공화당 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민주사회주의자)이 왔다고 겁을 먹었다”고 보도했다.
밴스 의원은 전통적인 공화당 의원들과는 다른 정치 노선을 추구해 왔다. 그는 법인세 인상을 지지하고, 기업의 반독점 규제 강화를 주장하며 친노조 정책을 옹호해 왔다. 그렇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수입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국경 강화, 기후변화 관련 규제 반대 등의 입장을 보였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면 밴스가 자신이 목소리를 낮추고, 트럼프의 정책 노선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트럼프는 이번에 승리해도 이미 한 번 대통령을 지냈기에 다시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 없다. 트럼프는 이 점을 의식해 ‘트럼프 아바타’로 불리는 올해 39세의 밴스 의원을 ‘후계자’로 낙점했다. 공화당 진영에서는 오는 2028년 대선에서 밴스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크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마켓워치는 “트럼프가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함에 따라 기업 경영자들과 투자자들은 트럼프 집권 2기에는 1기에 비해 친기업 노선이 약화할 것으로 우려한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에 법인세율을 현행 21%에서 28%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미국에서 법인세율은 35%였으나 트럼프 전 대통령 정부가 2017년에 이를 21%로 낮췄다. 이 법인세율 적용 시한은 2025년 말이다. 미 의회가 관련 입법을 하지 않으면 법인세율이 다시 원래대로 올라간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새로운 법 제정을 통해 법인세율을 28%로 올릴 계획이다.
밴스는 트럼프와 달리 법인세 인상을 지지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하면 법인세를 21%에서 20%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트럼프-밴스가 집권하면 밴스가 트럼프의 감세 노선을 따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밴스는 기업의 반독점 규제 강화를 지지한다. WP는 “밴스가 전통적인 공화당 노선을 벗어난 세금 정책을 모색해 왔다”면서 “연간 총수입 5억 달러 이상인 대기업이 인수합병하면 세금 공제 혜택을 전면 몰수하는 법안을 그가 제출했다”고 전했다. ‘흙수저’ 출신인 밴스는 또한 억만장자들이 대학에 내는 기부금에도 세금을 매기는 법안을 제출했다.
밴스는 바이든의 핵심 정책인 기업에 대한 독점 규제 강화를 지지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밴스는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을 공개적으로 지원했다. 밴스 의원은 공화당 소속인 미주리주의 조시 홀리 상원의원, 플로리다주의 매트 게츠 하원의원과 함께 이른바 '칸 보수파(Khanservatives)'로 통한다고 로이터가 소개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칸 보수파는 "미국의 반독점법이 소비자물가를 낮추는 것보다 더 광범위한 목적이 있다"는 칸 FTC 위원장의 주장을 지지하는 그룹이다.
트럼프 집권 2기에 밴스가 빅테크 조사에 동의할 것이고, 트럼프 역시 빅테크 단속에 인색하지 않다고 로이터가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의 FTC와 법무부는 메타, 아마존, 애플, 구글을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조사했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밴스는 지난 2월 트위터에 "너무 늦었지만, 구글을 분할할 때가 됐다”면서 “명백히 진보적인 IT 회사가 우리 사회 정보의 독점적 통제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2기에 인수합병(M&A)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했다.
마켓워치는 밴스와 트럼프가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올리고, 국경 강화 조처를 하면 기업의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세를 올리면 외국산 제품을 수입하는 미국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고, 기업은 이를 소비자에게 전가한다. 또 국경 수비를 강화해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차단되면 인건비가 오른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