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모션 캡처 기술을 바탕으로 가상의 아바타를 내세운 아이돌, 이른바 '버추얼 아이돌'이 연달아 인기를 얻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실제 인간과 유사한 버추얼 휴먼, 보다 만화적 그래픽을 내세운 버추얼 유튜버(버튜버) 등 다양한 기반을 가진 이들이 콘텐츠 분야의 미래로 각광받는 추세다.
한국버추얼휴먼산업협회(KOVHIA)는 이러한 버추얼 휴먼, 버튜버와 모션 캡처 등 유관 기술을 보유한 102개 기업들이 뭉친 연합체다. 지난해 11월 창립 총회를 가진 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주관 사단법인으로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KOVHIA는 HTC 바이브, SK텔레콤과 협력해 지난 14일 경기도 판교 아이스퀘어에서 'AI XR 미디어 데이' 행사를 진행했다. 현장에서 만난 서국한 KOVHIA 회장은 "가파르게 성장하는 버추얼 크리에이터 시장에서 한국만의 강점을 찾아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 왔다"고 밝혔다.
서국한 협회장은 버튜버 서비스 '아이튜버' 개발사인 두리번의 대표다. 설립 초창기에는 실감 미디어 기술로 VR 콘텐츠, 어트랙션 등을 개발했으나 VR 시장 전체가 정체됨에 따라 다른 시장을 모색, 2018년부터 버튜버 솔루션을 개발했다.
두리번은 아이튜버를 여러 크리에이터들에게 지원해왔으며 약 300명의 크리에이터들이 이를 활용해 콘텐츠를 선보였다. 또 '지식줄고양', '1분만', '김빠른' 등 지식 정보 분야 크리에이터들을 중심으로 10명의 유튜버와 파트너 계약을 체결, 이들에게 전용 버튜버 아바타를 제공하고 있다.
버튜버의 시초는 2016년 12월 일본에서 활동을 개시, 약 300만명의 구독자를 모은 끝에 2022년 2월 활동을 중단한 '키즈나 아이'가 손꼽힌다. 서 협회장은 "일본의 버튜버 문화가 한국에 상륙해 어떻게 성장하고 변모하는지 바라보고 또 고민하던 가운데 협회장 자리를 제의받았다"며 "한국만의 색깔을 가진 버튜버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마음에 협회장을 맡게 됐다"고 술회했다.
홀로라이브 프로덕션과 브레이브 그룹 등 일본 버튜버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국내 오프라인 행사를 열고 국내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는 등 한국 시장을 향한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서국한 협회장은 "국내 서브컬처 문화가 일본 문화와 유사한 만큼 이러한 진출은 분명히 위기"라면서도 "한국 버튜버들이 한국만의 버튜버로 탈바꿈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KOVHIA의 초대 협회장은 버튜버 분야를 맡은 서국한 협회장과 버추얼 휴먼 분야를 맡은 오제욱 디오비(dob)스튜디오 대표가 공동으로 맡고 있다. 여기에 디캐릭, 루트엠앤씨, 메타로켓, 스튜디오 메타케이, 유니티 코리아, 이엠피, 이너버즈, 패러블 엔터테인먼트, 팬딩, 휴멜로 등이 임원사로 함께하고 있다.
서 협회장은 "버추얼 휴먼은 광고 시장을 타깃으로 기업의 모델로 활용되는 사례가 많은 반면, 버추얼 유튜버는 1인 미디어 기반 방송인에 가까워 보는 시장이 다르다고 본다"며 "플레이브, 이세계아이돌을 비롯한 버추얼 아이돌들이 팬덤을 기반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후발 주자들도 여럿 등장할 것으로 본다"고 발언했다.
또 "버튜버를 서브컬처 시장에 한정 짓는다면 한국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에 가깝다고 본다"며 "케이팝(K-Pop) 시장이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이와 결합한 버추얼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국만의 버튜버'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대중들 사이에선 버튜버가 '가상의 크리에이터'라는 이름만 보고 "사람이 아닌 AI',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실제 아이돌처럼 휴먼 리스크가 없다"는 등 오해하는 일이 적지 않다.
서 협회장은 지난해 12월 강연 중 이러한 인식에 대해 "버튜버도 결국 사람으로서의 매력을 통해 팬을 만드는 이들"이라며 반박한 바 있다. 이번 인터뷰 중에도 그는 "플레이브, 이세계아이돌, 스텔라이브 등이 인기를 얻으며 '버튜버는 사람이 아니다'는 등의 오해가 점점 줄고 있다고 본다"며 "향후 버튜버들이 성장할 수록 대중의 인식 또한 더욱 개선되길 기대한다"고 평했다.
가상·증강현실(VR·AR) 분야에선 한국메타버스산업협회(K-META)를 비롯한 여러 협회들이 존재한다. 이들과의 차별점에 대해 묻자 서국한 협회장은 "업체와 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발전하며 설립된 자생적 협회라는 점"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협회 설립이 선행되고 회원사를 모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나 KOVHIA는 기업 간 커뮤니티가 협회로 이어진 사례"라며 "또한 기술 자체보다 서비스, 캐릭터 등 콘텐츠에 집중하는 업체인 만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를 주무부처로 한 K-META와 달리 문체부를 주무부처로 뒀다"고 설명했다.
콘텐츠 팬들 사이에선 정부가 운영하는 협회의 설립이 산업의 양지화, 발전을 이끌기 보단 정부의 입김 강화, 규제 확대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국한 협회장은 이에 관한 질의에 "정부 측 관계자와 미팅을 가졌을 때, 미래 산업 측면에서 중요한 업계에서 자생한 협회가 찾아왔다는 것에 매우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악영향보다는 정부 차원의 지원 등 긍정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며, 산업 이해도 높은 업체들이 뭉쳐있는 만큼 업계에 무지한 이해관계자들의 입김이 들어오진 못하리라 본다"고 답했다.
KOVHIA의 초대 협회장으로서 포부를 묻자 서국한 협회장은 '버추얼 아이돌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기술 개발사의 대표로서 보다 쉽게 버튜버가 탄생할 수 있도록 유관업체들과 함께 판을 만들어 갈 것"이라며 "협회장으로서는 정부의 정책이 업계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