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시장 예상치를 살짝 웃돌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지연 전망에 힘을 더해주자 달러는 주요 통화 대비 전방위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달러/엔 환율은 뉴욕장 막판 158.44엔까지 급등하며 1990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화가 34년 만에 최저치를 거듭 경신하자 시장 참가자들은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한 일본은행의 달러 매도(엔 매수) 시장 개입 가능성에 촉각을 세웠다.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주간으로 2.4% 가량 하락하며 1월 중순 이후 최대 주간 낙폭을 기록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 금리를 동결한 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예상과 달리 엔화 가치를 지지하는 발언에 나서지 않았고 엔화의 하락세는 한층 가속화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회의에서 일본은행이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해 국채 매입 규모 축소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중앙은행은 국채 매입을 지속하기로 했다.
HSBC의 아시아 외환리서치 책임자인 조이 추는 일본은행의 전망 보고서가 지난 1월 발표된 보고서보다 더 매파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시장은 채권 매입과 관련된 일본은행의 입장에 대한 세부 정보가 부족해 실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아시아 거래 초반 달러/엔 환율이 154.97까지 잠시 하락하자 일본은행이 환율을 체크했다는 추측이 나오는 등 시장은 개입 가능성에 그 어느 때보다 주목했다.
한편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3% 상승해 시장 전망치와 일치했다.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로는 2.7% 상승해 월가 전망치인 2.6%를 상회했다.
BMO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더글러스 포터는 투자자 노트에 "연준이 선호하는 PCE 가격지수가 뜨겁지는 않았지만, 단기 추세가 2024년 초부터 꾸준히 위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썼다.
포터는 "이는 연준에게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썼다.
로이터에 따르면 CME 그룹의 페드워치(FedWatch) 툴에서 PCE 지표 발표 이후 미국 금리 선물 시장은 연준이 9월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58%로 반영했다. 이는 일주일 전의 68%보다 하락한 수치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지수는 뉴욕장 후반 105.94로 뛰어올라 전일 대비 0.46% 상승했다.
유로화도 달러 대비 0.33% 하락한 1.0693달러에 후반 거래됐다. 유로화는 주간으로는 달러 대비 0.36% 상승했다.
일본은행 개입 타이밍에 촉각...문제는 속도
일본은행은 이날 단기 금리 목표치를 0-0.1%로 유지하고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소폭 상향 조정했다.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는 금리 결정 후 기자회견에서 통화정책이 환율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지만 환율 변동성은 경제와 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에다 총재는 "엔화 약세가 경제와 물가에 무시하기 어려운 영향을 미친다면 정책 조정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은 지난 24일 "매우 긴박감을 가지고 시장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해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쓰이스미토모의 스즈키 히로후미 수석 통화전략가는 블룸버그에 “2022년 9월 일본은행의 개입 결정 이후처럼 엔화가 여기서 더 하락할 경우 개입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며 “엔화 수준이 아니라 하락 속도가 행동을 촉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 주 황금연휴를 앞두고 일본 증시 휴장 속에 엔화가 추가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은행은 2022년 9월 구로다 하루히코 전임 총재 시절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외환 시장 직접 개입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일본은행은 10월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9조엔(570억 달러·약 79조8600억 원) 이상의 엔화 매수 개입을 단행했다.
시장은 다음 주로 예정된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도 주목하고 있다. 연준이 매파적인 스탠스를 보이면서 달러화의 추가 상승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