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올해 최악의 국면으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포스트(WP)는 30일(현지시각) “지난해에 위기에 빠진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사정이 올해 더 악화할 것이고, 지역 은행과 금융 기관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사무실 빌딩, 소매점, 호텔, 창고 등 상업용 빌딩(CRE) 대출금 만기 도래 금액이 9000억 달러(약 1212조7500억 원)에 달하고, 이는 미국 전체 상업용 대출금의 약 20%에 달한다고 WP가 전했다.
WP는 “올해 상업용 부동산 대출금 상환 압박으로 인해 지역 은행과 금융 기관이 곧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며 “지난해에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대출금이 단기 상환 연장으로 버텼으나 올해 사정이 더 악화할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상한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중형 은행이 상업용 부동산에 막대한 대출을 했고, 상업용 빌딩 소유주와 개발업자들이 대출금 상환을 하지 못하면 금융 섹터에 연쇄 파장이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업용 부동산 중에서도 특히 사무실 빌딩 위기가 가장 심각하다고 이 신문이 지적했다. 앞으로 12개월 이내에 만기가 돌아오는 사무실 빌딩 등에 대한 '상업용 부동산 담보 증권(CMBS)'의 규모가 170억 달러에 달하고, 이는 지난해 당시의 2배가 넘는 것이라고 WP가 전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중 약 75%가 임대 계약 취소, 공실, 자금 조달 불가 등으로 인해 재융자가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대출자들은 팬데믹 당시에 저리로 받은 대출금을 금리 상승에 따라 높은 이자를 지급하면서 재융자를 하거나 금융 기관과 대출금 상환 연장 협상을 해야 한다. 무디스는 올해 1, 2월에 대출금 상환 비율이 48%로 지난해 당시의 35%보다는 올라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디스는 여전히 약 100억 달러에 이르는 CMBS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만약 이런 규모의 금액이 디폴트에 빠지면 사무용 빌딩 대출금의 디폴트 비율이 현재 6.2%에서 13%로 2배가량 올라간다. 이렇게 되면 사무용 빌딩에 집중적으로 대출한 지역 은행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상업용 부동산시장 데이터분석 업체 트렙(Trepp) 최고상품책임자 로니 헨드리는 이 매체에 “전체적인 그림의 윤곽이 드러나는 데 앞으로 몇 개월이 더 걸릴 수 있지만, 곧 그 조기 징후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금 상환 연기 또는 재융자가 이뤄질지가 관건이고, 이 과정이 늦어지면 올해 내내 이 문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향후 발생할 미국의 사무용 부동산 붕괴가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피치는 "이번 사이클에서 사무용 부동산 가치는 현재까지 35% 하락했다"며 "아직 금융위기 당시의 47% 하락보다는 가치가 높은 상황이나 최근 상황을 보면 내림세가 둔화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피치는 "금융위기 이후 비슷한 기간 동안 부동산 가치가 붕괴 이전 정점 수준의 80%까지 회복됐으나 현재 부동산 가치는 4년 사이 최저 수준이고, 회복이 이전보다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고금리, 재택근무 추세, 암울한 재융자 여건이 회복세를 늦추는 요인이라고 피치가 강조했다.
미국 주요 도시에서 사무실이 5개 중 하나 비율로 비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사무실 공실률이 19.6%에 달했다. 이는 최소한 1979년 이후 45년 만에 최고 기록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은 상업용 부동산 부실 우려를 이유로 미국 지역 은행 5곳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등급이 조정된 은행은 퍼스트 커먼웰스 파이낸셜, M&T 뱅크, 시노버스 파이낸셜, 트러스트마크, 밸리 내셔널 뱅코프 등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내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1조 달러 규모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가운데 약 70%는 중소·지역 은행이 안고 있다. 미국 은행 중 자산규모가 1000억 달러 이상인 은행의 CRE 대출 비중은 12.8% 수준이다. 반면 자산규모가 1000억 달러 미만인 은행은 비중이 35% 수준에 달한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