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올해 삼성전자의 추격을 뿌리치고 인공지능(AI) 열풍을 기반으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는 고부가가치 메모리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비교 우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가 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13일 증권가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전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아 시장 점유율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AI가 상용화를 본격화한 데 이어 올해부터는 저변화로 영역 확대가 본격화하면서 산업의 주류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러한 AI 추세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히는 미국 엔비디아가 산업은 물론 주식시장에서도 이른바 ‘엔비디아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덕분에 주춤했던 관련 인프라 분야 투자가 재개되면서 HBM 등 AI 반도체 시장도 활성화될 것이 확실시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26~2027년 HBM 시장이 50억 달러(약 6조5000억원) 규모로, 지난해 20억 달러 대비 2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트렌드포스도 전체 D램 시장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커지면서 지난해 기준 9% 수준에서 올해 18%를 넘길 것으로 봤다. 향후 5년간 연평균 40%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은 1위 SK하이닉스가 50% 이상을 차지했으며, 삼성전자가 40%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신 제품인 HBM3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90%에 육박하는 점유율로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에 비해 엔비디아 효과를 더 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전거래일 대비 5.04% 상승한 15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SK하이닉스 주가가 15만원을 넘긴 것은 지난 2021년 3월 2일 이후 처음이다. 같은 날 삼성전자는 1.48% 상승한 7만5200원을 기록했다.
올 들어 SK하이닉스의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연간 7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보며, 2022년 19조원이었던 설비투자(CAPEX) 규모를 지난해 절반 가까이 축소한 SK하이닉스는 올해 투자 규모를 다시 키우되 고객 수요가 많은 고부가 제품군에 집중 투자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집중 투자 주체는 HBM이 확실시된다.
최선단 D램과 HBM 생산에 꼭 필요한 TSV(실리콘 관통전극) 분야가 투자 우선순위로 꼽힌다. 김규현 SK하이닉스 D램 마케팅담당은 최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수요 가시성이 확보되면 올해 TSV 생산능력을 2배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대대적인 반격을 예고한 상태다. 회사는 지난달 31일 2023년 4분기 및 연간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HBM3와 HBM3E(5세대)의 선단 제품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올해 상반기 중 판매 수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하반기에는 그 비중이 90%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투자의 유의미한 확대도 예견했다. 한진만 삼성전자 DS부문 미주총괄(DSA) 부사장은 최근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 HBM의 시설 투자를 2.5배 이상 늘렸는데 올해도 그 정도 수준을 예상하고 있다”며 “올해 메모리 시장은 누가 AI에 잘 대응하는지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표준 제품뿐 아니라 고객 맞춤형인 커스텀 HBM 제품도 함께 개발 중이다. 회사 측은 “현재 주요 고객사들과 세부 스펙에 대해 협의 중”이라며 “커스텀 HBM 시장에서 파운드리, 시스템LSI, 어드밴스트 패키징팀과 시너지를 내겠다”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