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자'는 라이엇 게임즈의 비전에 적합한 콘텐츠이나, 비즈니스적 불확실성을 우려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100개 이상의 프로팀들을 비롯해 업계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고 있으며 이에 막중한 챔임감을 느낀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발로란트 등 유명 게임들의 개발·운영사 라이엇 게임즈에서 e스포츠 부문을 지휘하는 존 니덤 총괄이 최근 공식 블로그를 통해 한 말이다.
라이엇 게임즈는 e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리딩 기업이다. 2011년 최초로 개최된 연례 대회 LOL 월드 챔피언십은 세계 최고의 스포츠 축제 월드컵에 빗대 '롤드컵'으로 불릴 정도다. 지난해 월드 챔피언십의 최다 동시 시청자는 약 515만명으로 전년도 402만명 대비 28.1%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LOL의 흥행조차 e스포츠 시장 전체에서 일부일 뿐이다. e스포츠어닝스에 따르면 2022년 e스포츠 대회 상금 통계 순위에서 LOL은 10위에 머물렀다. 유사 장르 '도타2'나 '왕자영요'는 물론 슈팅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배틀그라운드', 스포츠 게임 '로켓 리그' 등 다양한 게임들이 LOL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투자 전문가들은 e스포츠의 비즈니스적 가치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디어 전문 투자사 드레이크 스타 파트너스에 따르면 지난해 게임 분야 글로벌 투자 695건 중 4.7%에 불과한 33건만이 e스포츠 관련 내용을 포함했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e스포츠가 주목받던 2021년에도 이 비율은 19.2% 수준이었는데 1년만에 1/4 수준으로 급락했다.
e스포츠가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업체들 스스로가 수익성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세계적인 e스포츠 구단 중 흑자를 보고 있는 곳은 미국의 팀 솔로미드(TSM) 뿐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마저도 업계 내의 통설일 뿐 공식 발표나 명확한 재무 자료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나스닥에 최초로 프로게임단 페이즈 클랜(FaZe)이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합병 형태로 상장했다. 이들은 회계연도 기준 지난해(4월~2023년 3월) 매출 7002만달러(약 937억원)에 영업손실 4867만달러(약 65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상장 당시 10달러 전후였던 주가는 26일 0.5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프로 스포츠의 주요 매출원으로 통상 중계권료 판매 수익, 선수 이적료 등이 꼽힌다. 하지만 e스포츠는 유튜브·트위치 등 1인 미디어를 중심으로 시청자층이 형성돼 TV 등에 중계권료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다. 선수 이적료를 주고받는 문화 역시 정착되지 않았다.
켈렌 브라우닝 뉴욕 타임스 기자는 이에 대해 "많은 투자자들이 코로나 팬데믹 초창기 e스포츠가 제2의 NBA(미국 프로농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시장에 진입했다"며 "곧 그들은 NBA에 수익 체계가 자리잡는 데 최소 50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지적했다.
e스포츠 활성화가 재무적 이익을 창출하진 않아도 마케팅 효과가 있다는 것이 통설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게임사 입장에선 신규 이용자 확보를 통해 간접적인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란 추측이 많았다.
존 니덤 라이엇 게임즈 e스포츠 총괄은 "대다수 시청자들은 기존 이용자로 '게임을 더 잘하기 위해' e스포츠 경기를 시청하고 있으며, 라이엇 게임즈는 신규 플레이어 확보 수단으로 e스포츠를 활용하진 않고 있다"며 이를 부정했다. 또 "시청자가 e스포츠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초보자를 위한 방송'들을 제작해봤으나 큰 효과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e스포츠의 종주국으로 꼽히는 한국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스타크래프트 종목의 임요환, LOL 종목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인 '페이커' 이상혁 등 NBA의 마이클 조던에 비견되는 스타 프로게이머들의 등장에 힘입어 시장의 주목도는 확대됐으나, 실질적인 재무적 성과는 가시적이진 않다.
LOL 1부리그 LCK(LOL 챔피언스 코리아) 소속 팀을 운영하는 샌드박스게이밍(SBXG)은 최근 시각특수효과(VFX) 기업 포바이포(4by4)에 인수됐다. SBXG는 2021년 기업가치 500억원을 목표로 투자 유치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인수 과정에서 지분율 18.2%에 해당하는 신주 840주가 63억원으로 평가됐다. 이를 토대로 역산한 기업가치는 약 350억원이다.
e스포츠 구단들이 어려움에 처한 이유로 존 니덤 총괄은 선수 연봉 문제를 들었다. 그는 "2017년부터 리그 매출 50%를 구단들에게 분배하는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다"며 "이는 최고의 선수들이 고액 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선수 연봉 수준이 기업 매출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고 평했다.
LCK 사무국은 최근 레전더리스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디지털 콜렉터블' 사업 추진을 공식화했는데, 팬들은 이를 블록체인 기반 NFT(대체불가능토큰)로 바라보고 있다. 이 외에도 e스포츠 업계에선 수익화 문제 해결을 위해 △각 구단별 선수 연봉 총합에 상한선을 두는 '샐러리 캡' 제도 △스포츠 토토에 e스포츠 종목 추가 등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샐러리 캡은 e스포츠 팬들로부터 "중국 등 해외발 거대 자본들과의 경쟁이 연봉 급등의 이유인데, 무작정 샐러리 캡을 도입하면 오히려 선수들의 해외 유출과 리그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반발을 사고 있다. e스포츠 토토나 NFT 역시 게임과 사행성의 결합을 극도로 경계하는 국내 사회 정서상 손쉽게 도입되긴 어려울 전망이다.
니덤 총괄은 e스포츠와 프로 스포츠를 비교하는 것을 두고 "우리는 e스포츠가 전통 스포츠와는 다른 형태의 생태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e스포츠만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BM)로는 △게임 내 콘텐츠와 연동된 '팬 패키지'의 전면 확대 △온라인 시청과 연계한 '버추얼 패스'나 가상 클럽하우스 등 게임 외 경험 창출 등을 제시했다.
그는 이어 "e스포츠는 강한 잠재력이 있는 젊은 게이머층이 있는 만큼, 여러 이해 관계자들과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라이엇 게임즈는 이러한 미래를 바라보며 e스포츠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으며 머지않아 우리의 비전을 현실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