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는 주인공 진도준(송중기 분)이 ‘뉴데이터테크놀로지’라는 기업에 투자, 주가가 수백 배 치솟는 과정에서 고모 진화영(김신록 분)으로 하여금 회사 공금으로 투자에 동참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 속 ‘뉴데이터테크놀로지’는 1993년 설립돼 닷컴 열풍을 타고 상승했다가 급추락한 새롬기술이 모델이다. 1999년 8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새롬기술의 공모가는 2300원이었고 그해 10월 잠시 떨어진 것을 제외하면 2000년 3월초까지 무려 149.2배(28만2000원)라는, 역대 주식시장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다. 무료 인터넷 전화 ‘다이얼패드’ 서비스 덕에 투자가 몰렸고 한때 새롬기술 시총은 삼성전자 보다 높았다.
그러나 주력인 인터넷 전화사업은 별 수익을 내지 못했고 경영권 분쟁과 분식회계가 있었고 작전세력 개입설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회사 미국법인이 2001년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이어 주가도 폭락한다. 개미투자자들은 물론 삼성그룹 계열사들마저 수백억원대 투자손실을 입었다. 새롬기술은 현재 투자자문사 솔본으로 사명을 바꿔 코스닥에 상장돼 있다.
비슷한 일이 20년 후인 지난 2020년에도 벌어졌다. 새롬기술의 7개월,149.2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여일만에 무려 590% 상승한다. 과열에 따른 거래정지일을 제외하고도 6거래일 연속상승에 380%가 올랐다. 코로나19 진단기기 등 의료기기 제조업체 피에이치씨(PHC) 이야기다. 현재 PHC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코스닥 상장사 임원들이 구속 위기에 처해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최인환 각자 대표를 구속하기도 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PHC 주가조작 혐의로 코스닥 상장사 S사 임원 A씨 등 3명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들이 개입한 2000년 당시 피에이치씨 주가 흐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020년 8월 PHC 관계사인 필로시스헬스케어는 자사의 코로나19 진단키트가 국내 최초로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했다고 밝혔고 PHC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지만 검찰은 여기에 허위 사실 또는 왜곡된 정보가 포함됐고 시세 조종 세력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주가를 부양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 8월18일 PHC는 자사가 지분 21.99%를 보유한 계열사 필로시스헬스케어가 국내 최초로 검체채취키트의 FDA 허가를 획득했다고 밝혔다. 피에이치는 이 이슈로 무려 6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다.
당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공포 속 FDA 허가 획득 소식은 피에이치 주가에 엄청난 호재로 작용했다. 회사 주가는 8월 18일 1257원(1.95%) 으로 출발했지만, 이와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29.85% 급등한 1601원으로 마감했다.
이어 8월19일 1876원(+17.18%)로 출발한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하며 2080원(29.92%)으로 마감했다. 8월20일은 상한가로 시작해 상한가로 끝나면서 주가는 2704원까지 치솟으며 3거래일 연속 상한가 행진을 이어갔다.
8월21일 역시 출발은 상한가 3514원으로 시작했지만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차익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장중 3188원까지 밀리는가 싶더니 결국 3514원으로 마감하면서 4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찍었다.
주말을 쉬고 8월 24일에 가서도 투자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4375원(+24.50%)으로 시작했지만 오히려 거래량이 크게 줄더니 결국 4585원(+29.91%)로 마감하면서 5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찍었다.
주가가 단기 과열로 흐르자 25일 하루 매매거래가 정지됐다.
하지만 진단키트 관련주에 열광한 투자자들은 매매 정지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며 26일 매매거래가 재개되자 시초가를 상한가로 끌어올렸다.
결국 이날도 상한가인 5929원으로 마감하면서 피에이치 주가는 6거래일 연속 상한가 행진 기록을 달성하게 됐다. 거래정지일을 제외하고도 6거래일 동안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주가는 무려 380%나 폭등했다.
8월 27일 이후 주가는 단기 조정을 받기는 했지만 9월 9일 8507원까지 반등하면서 호재성 발표 전일 주가 1233원과 비교해 589.94% 급등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후 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며 2022년 3월 22일까지 거래된 이후 매매거래 정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PHC, 어떤 회사인가?
PHC는 1998년 설립 이래 디지털방송 셋톱박스를 주력사업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이다. 2000년 셋톱박스를 해외 수출하고 2007년 1800억 매출 달성 등 기술력과 영업력을 모두 갖춘 회사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는 2019년 주력사업을 바이오로 전환했다. 2021년 사명을 필로시스헬스케어에서 피에이치씨(PHC)로 변경했다. PHC는 지난해 12월 29일 최인환·김규환 각자대표이사 체제에서 김규환 단독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했다. 이는 최인환 각자대표 구속에 따른 사임 영향이다.
하지만 이 회사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최인환 전 대표가 등장한다. 최인환 전 대표가 “코로나진단키트와 검체 채취 키트를 자체 개발하는 등 진단사업에서의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국내기업 중 최초로 키트를 미국에 정식 수출하는 등 명실상부한 글로벌 경쟁력을 증명해냈다”며 회사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PHC의 실상은 소개와는 다른 모습이다. 코스닥 상장사 피에이치씨(057880) 주가는 지난해 3월 22일 이후로 1740원에서 멈춰 있다. 거래가 정지되었기 때문이다. 시가총액은 2067억원이다.
매매거래가 재개되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시 한국거래소는 PHC 주식매매거래를 정지시키면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피에이치씨가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감사 범위 제한으로 인한 의견거절이 나오면서 상장폐지사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외부 감사인인 이정회계법인은 감사보고서에 "피에이치씨의 감사 결과 감사의견의 근거를 제공하는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증거를 입수할 수 없었다"며 의견거절 이유를 기재했다.
한편 서울남부지법의 영장실질심사 결과는 오늘 저녁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정준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jbkey@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