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용진 부회장이 최대 주주인 이마트는 코로나19라는 악재에도 연 매출 20조 시대를 연 반면, 정유경 총괄사장 몫의 신세계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81.1% 급감하면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1년여 전 신세계그룹 남매경영의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소기의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세계 강남점의 연 매출은 2019년 대비 5.5% 증가한 2조 394억 원, 센텀시티점의 연 매출은 2019년 대비 7.5% 늘어난 1조 2322억 원을 기록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디에프, 센트럴시티, 까사미아 등 신세계 연결 자회사들의 실적 개선도 눈에 띈다.
지난해 4분기 신세계디에프는 4558억 원, 영업이익 26억 원을 달성하며 지난해 1분기 이후 3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을 이뤘다. 센트럴시티도 점진적인 호텔 투숙률 상승과 임대매장 실적 회복으로 매출(7.2%)과 영업이익(25.0%) 모두 전 분기 대비 상승하며 흑자경영을 이어갔다.
신세계는 지난해 명품 판매로 짭짤한 재미를 본 점을 반영해 올해 수익성이 저하된 패션 브랜드는 축소하고 뷰티 브랜드 확장에 주력한다. 지난해 라부르켓, 컴포트존, 엑스니힐로, 로이비 등 4개 뷰티 브랜드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는 ‘스위스퍼펙션’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놓는다.
◇ 신세계 신성장 동력은 '가구'와 '미디어'?
지난해 4분기 까사미아는 신규점 출점과 주거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으로 2019년 4분기 대비 매출이 28.1% 올랐다. 까사미아의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은 1118억 원으로 2019년 연간 매출을 넘어서기도 했다.
특히 까사미아는 정 총괄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후 처음으로 선보인 M&A의 주인공으로, 2018년 1월 신세계그룹에 인수됐다. 당시 정 총괄 사장은 5년 내 까사미아의 매출을 4500억 원으로 끌어올리고, 2028년까지 1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까사미아는 2018년 7월 라돈 침대 사건에 휘말리는 등 악재로 골치를 앓았고 인수 첫해 4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정 총괄 사장은 까사미아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사업 전반을 재편했다. 2019년 1년 동안 238억 원을 투자해 브랜드 혁신, 유통망‧조직체계 재편에 전념했다. 또 효율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받는 오프라인 점포 20개를 정리하고 23개를 신규 출점했다.
2년간 180억 원 규모의 손실을 뒤로 한 채 까사미아는 지난해 본격 도약을 시작했다. 지난해 7월 라이프스타일 전문 온라인 쇼핑몰 '굳닷컴'을 오픈하고 '커머스&커뮤니티' 개념을 도입해 방 꾸미기 등 이슈 관련 콘텐츠를 선보였다. 굳닷컴은 출시 당시 목표로 제시한 연내 300개 브랜드 입점을 달성해 현재 320개 브랜드, 1만 5000개의 상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여기에 정유경 총괄 사장은 자회사 '마인드마크' 사업을 본격화하며 미디어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마인드마크는 신세계그룹이 미디어 사업 추진을 위해 260억 원을 출자해 지난해 4월 설립한 100% 자회사다.
마인드마크는 지난해 콘텐츠 제작사를 연달아 인수하면서 사업 준비에 속도를 냈다. 지난해 6월에는 드라마, 광고, 예능 등 각종 콘텐츠를 제작하는 실크우드를 32억 원에 인수했고, 이어 9월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과 유튜브 프리미엄 드라마 '탑매니지먼트'를 배급·유통한 스튜디오329를 45억 원에 인수했다.
마인드마크는 SNS채널 '꿈꾸는 집'을 운영하면서 미디어 커머스에 시동을 걸고 있다. 꿈꾸는 집은 홈 스타일링을 제안하는 채널로 지난해 7월 17일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널을 출범하면서 첫 선을 보였다.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 집'과 유사한 감각적인 '집꾸미기' 콘텐츠로 구성한 채널이다. 오늘의 집은 800만 건 이상의 인테리어 콘텐츠를 커머스와 연결시키며 1000억 원의 월 거래액을 내고 있다.
꿈꾸는 집은 까사미아, 자주, 스타벅스 등 신세계 계열사와 연계한 홈 인테리어 콘텐츠로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높인다는 데 차별성이 있다. 향후 드라마나 예능 등 본격적인 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게 되면 이같은 시너지는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 신세계, 호텔·배달 분야로 영역 넓힌다
정유경 총괄 사장은 가구와 미디어 외에도 다양한 분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5성급 독자 호텔 브랜드 '오노마'로 호텔 사업에 진출한다. 이는 신세계백화점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첫 호텔 브랜드로, 오는 8월 대전 유성구에서 오픈하는 신세계백화점 사이언스콤플렉스점 옆에 지어진다.
이 호텔은 200여 실 규모로, 대연회장과 루프톱(천장이 개방된 야외 공간) 레스토랑 등을 갖출 예정이다. 백화점과 계열사 호텔이 인접해 비즈니스 고객과 쇼핑객들을 동시에 공략하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의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신세계백화점이 추진하는 첫 독자 호텔인만큼 해외에서는 인지도를 쌓지 못한 점을 고려해 메리어트그룹과 제휴를 맺고 글로벌 예약시스템을 활용하기로 했다.
신세계는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등의 잇단 투자로 주목받은 동남아시아 플랫폼 ‘그랩’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그랩은 2012년 차량 호출 서비스로 시작해 음식‧식료품 배달, 금융서비스까지 사업을 확장한 동남아시아 대표 앱 서비스다. 현재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8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으며 2억 1400만 건 이상의 모바일 다운로드를 달성했다.
투자 주체인 신세계그룹의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신세계그룹이 지난해 7월 설립한 벤쳐캐피탈(CVC)이다. 정유경 총괄 사장의 남편인 문성욱 신세계톰보이 대표이사는 시그나이트파트너스 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현재까지 패션테크기업 ‘에이블리코퍼레이션’, 부동산 개발‧임대관리기업 ‘홈즈컴퍼니’, 미국 패션 브랜드 ‘인타이어월드’ 등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신세계 백화점 부문은 전체 임원의 20%가량이 퇴임하는 등 전체적으로 임원 수가 축소됐다. 특히 본부장급 임원의 70% 이상을 교체하는 등 조직 전반에 큰 변화를 줬다. 정유경 총괄 사장은 이 회장으로부터 신세계 지분 8.22%(최종 증여세 1045억 원)를 증여받으면서 최대 주주로서 입지가 더욱 탄탄해졌다.
1972년생인 정유경 총괄 사장은 오너일가 자녀 세대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임원을 단 자녀로 꼽힌다. 1996년 24세에 조선호텔 상무보로 임원이 됐다. 2009년 신세계 부사장을 맡을 때까지 조선호텔 프로젝트실장 등을 역임하면서 호텔 사업을 이끌었다. 동시에 어머니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해외 출장길에 수시로 동행하며 조용히 경영 수업을 받아 왔다.
정 총괄 사장은 파슨스에서 패션을 전공한 경력을 살려 신세계의 패션사업을 지휘하다 백화점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백화점 총괄 사장’이라는 직책은 그녀를 위해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적극적인 대외 행보를 이어가는 사촌 언니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과 달리 정 총괄 사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릴 정도로 공식석상 노출이 적었다.
업계에서는 신세계의 실적 반전을 위해 그녀가 올해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일고 있다.
손민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minjizza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