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소화제의 대명사는 '활명수'다. 활명수는 국내 최초이자 최고(最古) 제약사인 동화약품이 124년 전 민족을 위해 만든 '생명을 살리는 물'이다.
◇민족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다
동화약품은 1897년 창립된 국내 최초 제약사이자 국내 유일의 일업백년(一業百年) 제약사다. '민족이 합심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정신 아래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은 동화약품 활명수의 개발과 그 시작을 함께한다. 1897년 궁중 선전관 민병호 선생이 국내 최초 양약인 활명수를 만들면서 뿌리를 내렸고 민병호 선생은 이후 아들 민강 선생과 함께 활명수의 대중화를 위해 동화약방(現 동화약품)을 창업했다.
당시 활명수는 우리 국민에게 상당히 귀한 존재였다. 민중들이 급체, 토사곽란 등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는데 활명수는 그 의미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물(살릴 活, 생명 命, 물 水)이라고 불리며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다.
특히 동화약품은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했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체계화 된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 간 비밀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운영했다. 동화약방 사장이던 민강 선생은 국내외 연락을 담당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활명수를 이용해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활명수 한 병 값은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동화약품은 독립이 될 때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36년 8월 9일 우리나라 손기정, 남승룡 선수가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자 승전보를 알리는 축하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했다. 광고에서 조선 청년의 의기충천(意氣衝天)을 알리고 '건강한 조선을 목표로 하자'는 메시지를 담아 암울한 시대 국민들의 자부심을 일제 치하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소화제'
활명수는 현재 액상 소화제 매출 1위는 물론 70% 내외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까지 생산된 활명수는 약 86억 병 이상으로 이는 전세계 인구 약 65억 명이 1병 이상 마시고도 남는 수량이며 우리 국민 4800만 명이 1인당 179병씩 마실 수 있는 양이다.
활명수가 100년 이상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은 변함없는 약효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를 추구한 데 있다. 실제로 동화약품은 1967년 기존 활명수에 탄산을 첨가해 청량감을 보강한 '까스활명수'를 출시했고 1991년에는 '까스활명수-큐'를 선보이며 브랜드 리뉴얼을 추진했다.
여기에 2015년에는 오매(매실을 훈증한 생약성분)를 함유해 여성 소화불량과 정장 기능 개선에 효과적인 '미인활명수'를 내놨다. 이후 출시된 '꼬마활명수'는 만 5세에서 7세를 위한 어린이 전용 소화정장제로 스틱형 파우치 포장과 어린이 보호용 안전포장이 적용됐다. 2017년에는 신제품 '미인활(活)'이, 2020년 9월에는 복용 편의성을 높인 '활명수-유'가 시장에 나왔다.
이와 함께 활명수는 이제 전 세계 어린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물로 거듭나고 있다. 동화약품은 매년 독특한 디자인을 담은 '활명수 기념판'을 준비, 수익금을 물 부족 국가의 식수 정화, 우물 설치, 위생 교육 사업 등을 지원하는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민 문구 기업 모나미와 함께 123주년 기념판을 판매했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동화약품은 앞으로도 활명수의 생명을 살리는 물 정신을 바탕으로 국민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황재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soul3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