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49)은 역발상식 공격경영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상황을 지켜본 후 적절한 타이밍이 됐을 때 전략적으로 시장에 끼어들고, 경우에 따라선 적과의 협업도 불사한다. 특히 자사에 없거나 부족한 역량을 짚어내 흡수하고 재창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 위기에 빛나는 승부사적 기질
그는 위기 때마다 M&A로 사업 확장에 나섰다. 실제로 현대백화점그룹은 2010년대에 1년에 1건꼴로 기업인수를 진행했다. 2011년 LED조명업체 반디라이트(현대LED), 2013년 식품 가공업체 씨엔에스푸드시스템, 2015년 건설·중장비업체 에버다임에 이어 2018년 건자재 업체 한화L&C(현 현대L&C)를 품으며 영토를 넓혀왔다.
그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것이 2012년 흡수한 패션기업 한섬과 가구기업 현대리바트다. 이 두 사업은 현재 그룹의 가장 큰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19로 유통업계 대부분이 직격탄을 맞은 올해 상반기에도 그의 승부사적 기질이 빛났다. 정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비상(非常)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는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대안을 찾는 ‘혁신적 사고’를 통해 성장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창사 첫 계열사(현대 HCN) 매각부터 사업 영역 확장, 면세점‧아울렛‧백화점 출점까지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달 18일에는 화장품 원료시장 1위 기업인 SK바이오랜드 인수를 공식화하며 3대 핵심사업인 유통, 패션, 리빙·인테리어에 이어 뷰티와 헬스케어 부문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정 회장은 이외에도 그룹 계열사들의 협업으로 건강기능식품과 바이오메디컬 사업의 경쟁력 강화에 나설 방침이다.
◇ 효율성‧전문성을 강조하는 실리 경영 전략
롯데쇼핑의 ‘롯데온(ON)’과 신세계그룹의 ‘SSG닷컴’이 통합 몰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현대백화점그룹은 계열사별 강점을 살린 전문 몰을 지향한다.
백화점·홈쇼핑은 종합 쇼핑몰인 더현대닷컴(백화점)·현대H몰(홈쇼핑)을, 한섬·리바트·현대그린푸드는 제조사의 전문성을 강조한 온라인몰인 더한섬닷컴·리바트몰·그리팅몰을 각각 운영 중이다.
현대백화점의 전문성은 식품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는 2018년 e슈퍼마켓에서 업계 최초로 '새벽식탁' 배송 서비스를 시도한 이력이 있다. 이후 2년여의 준비 끝에 올해 7월 신선식품 새벽 배송 온라인몰 '투홈‘을 오픈했다. 이어 유명 반찬을 매월 정기배송해 주는 구독 서비스도 시작했다. 물류창고와 배송 업무를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물류회사 현대글로비스에 맡긴 것은 투자비용을 줄이고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타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진행해온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더현대닷컴은 2017년부터 네이버 쇼핑에서 백화점 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업계 최초로 지난해 5월 위메프, 8월 쿠팡에 각각 입점했다. 배달업계 1위 플랫폼인 배달의민족의 배민오더에서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식당가 음식을 미리 주문하거나 포장해 갈 수 있는 점도 소비자의 입맛을 충족하고 있다.
◇ 면세 사업으로 한 단계 도약 꿈꿔
정 회장은 면세 사업을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로 잡고 집중 투자하고 있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올 초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4기 사업자에 선정된 데 이어 오는 9월 열릴 인천국제공항 제1 여객터미널(T1) 면세사업권 2차 입찰 참여 여부를 검토 중이다. 여기에 이달 중 공고가 나오는 제주 시내면세점 입찰에도 참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해당 사업권을 따내게 되면 이 회사는 2018년 11월 강남면세점을 시작으로 올해 2월 동대문점(시내면세점 2호점), 인천국제공항을 거쳐 제주까지 면세사업을 확장하게 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4월 대치동 신사옥으로 본사를 이전한 것을 계기로 한 단계 도약을 준비 중이다. 올해 6월 개점한 대전점을 시작으로 오는 11월 남양주점 등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추가 출점이 예정돼 있다. 2021년 초에는 서울 여의도 파크원에 초대형 백화점도 선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지선 회장은 회장직에 취임한 2007년 이후 13년 동안 실리 경영을 기반으로 현대백화점그룹을 키워왔다. 이 그룹이 재계에서 자산 기준 22위의 종합 생활 문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 회장의 지략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손민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minjizza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