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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우울한 날엔 숲길을 걷자

백승훈 기자

기사입력 : 2020-02-1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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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거리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고 오가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휴일 아침, 사람들의 거리를 떠나 숲을 향해 걸었다. 아침 공기가 제법 싸하다. 지붕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 골목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니 가랑잎 위로 청설모 한 마리가 갈참나무 위로 줄행랑을 쳤다. 요 며칠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면서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던 개울물은 다시 얼어붙어 고요하고 마른 가랑잎엔 서리가 하얗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각각의 계절에 충실한 삶을 살아라. 그 계절만이 줄 수 있는 공기, 물, 과일을 음미하며 대지의 기운에 몸을 맡겨라”라고 했다. 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숲에 오면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그리고 겨울은 겨울만의 독특한 풍경과 정서를 간직하고 우리를 반겨준다. 저마다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어쩌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마음 놓고 악수조차 나눌 수 없는 공포의 회색 도시를 벗어나 숲을 산책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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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산책하다 보면 어느새 복잡하던 머릿속이 맑아지고 덩달아 기분도 좋아진다. 사람들이 거리를 떠나 자연의 품에 안긴 이유도 있지만 숲속 공기 속엔 피톤치드(phytocide)라는 특별한 물질이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독특한 솔향기처럼 피톤치드는 식물이 세균이나 곰팡이, 해충을 쫓고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내뿜는 다양한 휘발성 물질로 그 성분은 수백 가지가 넘는다. 그중에도 피넨(pinene)과 캄펜(campene) 등의 성분은 사람이 들이마시면 혈압이 떨어지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감소하며, 몸을 지켜주는 면역 세포가 활성화되는 등의 산림욕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숲속의 나무들이 피톤치드 같은 물질을 공기 중에 풀어놓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전략의 일환이다. 나무들이 자신를 지키기 위해 내뿜는 피톤치드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인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일도 없다. 나 자신을 위해 한 행동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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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침엽수림이 활엽수림보다 피톤치드의 농도가 높고 계절별로는 여름이 가장 높고, 다음으로는 가을과 늦봄, 이른 봄과 겨울 순이라고 한다. 숲의 녹음이 짙어지는 5월부터 잎이 떨어지는 가을까지가 삼림욕하기에 좋은 계절임을 알 수 있다. 하루 중엔 기온이 높은 낮 시간대에는 낮은 농도를 보이다가 늦은 오후에 점차 증가하기 시작해 기온이 낮은 밤을 지나 이른 아침에 가장 높아진다. 그 이유는 숲 속 나무에 의해 생산된 피톤치드가 기온이 낮은 이른 아침 시간에 지표면에 많이 축적되어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겨울은 삼림욕하기에 좋은 계절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록 피톤치드의 농도가 다른 계절에 비해 낮다고는 해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숲을 산책하는 것은 삼림욕이 아니라 해도 걷는 것만으로도 운동량이 늘어나고 심장도 튼튼해진다. 더욱이 눈 덮인 겨울 숲은 우리를 단숨에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자연 속의 원더랜드 아니던가. 차고 정한 겨울 숲에서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살펴보며 그 발자국의 주인을 헤아려보거나 나무들의 수피를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곧 피어날 초록의 새순과 꽃들을 상상하는 일은 숲에 든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소확행이다. 숲길을 걸으며 지저귀는 새소리, 뺨을 스치는 바람과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까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숲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날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욱 건강해져서 어떤 바이러스의 공격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