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이 화웨이 제재로 비화하면서 그 불똥이 한국으로 튀는 모습이다.
미국이 화웨이 제재에 한국의 동참을 요구하면서 한국정부와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어려운 처지에 빠져들고 있다.
여기에 희토류 전쟁까지 터질 모양새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한국 외교부 등 여러 채널을 통해 화웨이 장비에 보안상 문제가 있다면서 화웨이 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청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미국이 고위급에서 화웨이 장비의 보안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해왔다"며 "화웨이의 보안 문제와 관련한 여러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외교부는 공식적으로는 "화웨이 제재 동참요구가 심각한 것은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화웨이 제재가 안보이슈인 만큼 동맹국차원에서 원칙론을 피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한국이 미중 간 무역전쟁에 휘말리게 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협상 결렬 이후 상대국에 추가 관세를 꼬리 물기식으로 부과하는 등 보복에 나선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화웨이를 고리로 동맹국들에도 동참을 촉구하고 있는 만큼 미국입장에서는 효과적으로 화웨이를 제재하기 위해 화웨이 와의 거래 규모가 큰 한국을 비켜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중국의 반발 가능성이다. 우리 기업들은 사드 사태 때 미국 편을 들었다가 중국의 반발로 큰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이번 사안이 미국과 중국 간 힘겨루기에서 중간에 끼어 한국이 피해를 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 비슷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2016년 7월 한국에 사드 배치를 공식화했는데, 이를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중국이 한국에 보복조치를 한 바 있다. 이번에도 한국이 미국의 입장을 수용해 화웨이와 거래 제한 조치에 나선다면 중국이 가만있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말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한다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대화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미국과의 공조가 필수인 한국으로서는 외면하기 힘들 수 있다.
화웨이는 정보통신기술 (ICT) 인프라 및 스마트장치를 공급하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 및 전자기기 제조업체로 한국 기업과 밀접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현대자동차, 한국전력, 한국증권전산, 농협 등이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통신사 중에서는 LG유플러스가 화웨이의 무선장비를 쓰고 있다. 망에서는 SK텔레콤과 KT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한다. 화웨이 기업 홈페이지에는 현대오토에버, LG CNS, LG화학, CJ올리브네트웍스, 효성ITX, GS ITM, 쌍용정보기술 등 무려 110개의 한국 기업들이 화웨이 협력사로 등재되어 있다.
미국의 화웨이 공격은 우리 기업에는 득(得)이 될 수도 있고 실(失)이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화웨이는 국내 기업들의 파트너사이기도 하지만 통신장비, 스마트폰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에도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화웨이가 통신장비나 스마트폰 글로벌 시장에서 주춤하는 사이 삼성전자와 같은 한국 기업이 이를 대체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동시에 중국에 반도체 및 스마트폰 생산기지를 둔 삼성전자가 지나치게 미국에 협조하는 모습으로 비칠 경우 현지 제품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이 화웨이에 부품을 공급하는 것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압력을 넣을 경우 삼성,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상당히 난처해질 수 있다.
화웨이는 중국 기업 중에서 삼성에 가장 중요한 파트너사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기준 5대 매출처로 AT&T, 도이치텔레콤, 버라이즌과 함께 화웨이를 꼽았다. 삼성전자가 이들 5개 사와의 거래에서 올린 매출은 올 1분기 전체 매출의 12%인 6조3000억 원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중국 매출은 전체의 10% 선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호주 일본 등 다른 미국 동맹국들의 경우 아직 화웨이 5G 장비 도입 여부를 결정하기 전 단계여서 오히려 파장이 크지 않지만, 한국은 이미 LG유플러스가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화웨이 5G 장비를 2만개 이상 설치한 상황이어서 주목된다. 미국 요구가 LG유플러스가 현재 서울에 깔고 있는 장비 수준에서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수준에 그친다면 몰라도 만약 이미 설치된 장비를 철거하라는 식으로 강도 높은 요구를 해올 경우 한국은 미국과 중국 틈바구니에 끼여 매우 난처한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 과기정통부는 정부가 개별기업 간 거래에 끼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다.
미중 무역전쟁은 한국 기업들에 더 이상 먼 산의 불구경이 아닌 발등의 불로 다가왔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