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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가을,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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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물들다 / 백승훈 시인
화살나무 잎이 빨갛게 물들었다. 모처럼 산책을 하려고 숲 들머리에 섰을 때 진홍색으로 물든 화살나무 단풍이 눈을 찔러왔다. 그 진홍의 이파리를 보는 순간, 나는 이 땅에 가을이 깊었음을 느꼈다. 아직도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선 오소소 소름이 돋을 만큼 한기를 품고 있다. 곱게 물든 화살나무 단풍은 이파리는 작아도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화살나무는 이른 봄, 여느 나무보다 일찍 새잎을 틔운다. 가을이면 복자기나무나 붉나무 못지않게 화려하게 물드는 단풍을 보려고 조경용으로 많이 심는 나무이기도 하다.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화살나무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 자생하는 낙엽관목으로 이 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나무들이 많다. 회나무, 참빗살나무, 참회나무 같은 나무는 화살나무와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데 주로 열매의 형태와 달리는 모습으로 구분한다. 특히 회잎나무는 화살나무와 거의 같은데 단지 날개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 화살나무란 이름도 나무줄기에 화살을 만들 때 곧게 날아가도록 달아 놓은 새의 깃털 같은 날개가 붙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줄기에 붙어 있는 이상한 날개는 봄에 일찍 나오는 연한 새순과 잎을 좋아하는 동물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보호장치다. 음나무가 어릴 때 어린 새순을 보호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가시를 달고 있는 것처럼 나름의 자기 방어책인 셈이다.

악양에 사는 박남준 시인은 이 ‘화살나무’를 두고 동명의 시에서 “그리움이란 저렇게 제 몸의 살을 낱낱이 찢어/ 갈기 세운 채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그대의 품 안 붉은 과녁을 향해 꽂혀 들고 싶은 것”이라고 노래했다. 세월은 말 그대로 쏜살처럼 빠르다, 화살나무 어린 새잎이 돋던 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진홍으로 물든 잎을 내 앞에 내어 보이는 걸 보면. 단풍 든 화살나무 이파리 하나 따서 수첩 속에 끼워 갈무리하고 숲길을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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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가 우거진 숲길엔 도토리가 제법 많이 떨어져 있다. 도토리는 특정 하나의 나무가 아닌, 참나무속에 속하는 다양한 나무의 열매를 통칭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13종의 참나무속 식물이 있는데 대표적인 도토리를 꼽는다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의 열매다. 상수리 도토리는 둥글고 신갈나무 그것은 길쭉한 계란형이고, 졸참나무 도토리는 길쭉하며 제일 작다. 도토리는 전통적으로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는 구황식품으로 이용됐으며, 다람쥐나 청설모 같은 산짐승들의 소중한 겨울 양식이기도 하다.

도토리를 보니 오래전, 소설가 이문열 선생을 따라갔던 경북 영양 두들마을의 낙기대(樂飢臺)와 허리에 상처를 입은 참나무 노거수들이 떠오르곤 한다. ‘배고픔을 즐긴다’는 의미의 낙기대 부근의 참나무들은 '음식디미방'을 쓴 장계향이 참나무를 심어 수확한 도토리로 굶주린 백성들을 보살핀 구휼의 현장이기도 하다. 나무에 파인 자국들은 도토리를 따기 위해 돌로 나무를 두드릴 때 생긴 상처라고 한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걷는 숲길 위로 시나브로 낙엽이 진다. 아직은 초록 일색이지만 설악산엔 첫 단풍이 들었다 하니 머지않아 이 숲에도 단풍이 붉게 타오를 것이다.

바야흐로 가을은 물드는 계절.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초록의 숲들이 서서히 단풍으로 물들고, 먹구름이 오가던 하늘도 점점 높아져 눈부신 새털구름 너머 쪽빛으로 물든다. 푸른 감은 노을빛으로 물들고, 대추알도 하루가 다르게 붉어진다. 단풍나무 숲을 지나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의 마음도 가을빛으로 물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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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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