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형 대외협력실장
이미지 확대보기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처벌'이 아니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기업이 얼마나 예방체계를 구축했는지를 묻겠다는 선언이다.
과거 산업안전보건법은 현장의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중심으로 작동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 관리자나 실무자가 책임을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접근 자체를 바꿨다. 책임의 중심을 현장에서 경영으로 옮겼다.
대표이사와 경영진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했는지, 충분한 예산을 편성했는지, 위험 요인을 개선하기 위한 조직과 절차를 운영했는지가 판단 기준이다.
결국 법이 요구하는 것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사고를 막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었는가'이다. 안전을 더는 생산 현장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경영의 핵심 과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현실은 아직 과도기다. 많은 기업들이 예방보다 사고 이후 대응에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한다. 사고가 발생하면 법률 대응, 합의, 공사 중단, 이미지 회복 등에 막대한 자금을 지출한다.
중대재해 전문 조직과 대형 로펌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사법 리스크를 피하는 일이 당장의 현실이다.
반면 예방 투자는 여전히 비용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안전관리 조직을 확대하고, 노후 설비를 교체하고, 안전관리자를 충원하는 일은 눈앞의 매출을 늘려주지 않는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투자 효과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고가 한 번 발생하면 그 비용은 예방 투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공사 중단과 법률 비용, 기업 신뢰 하락, ESG 등급 하락, 투자 위축까지 기업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엄청나게 늘어난다.
이 때문에 선도 기업들의 전략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안전을 비용이 아니라 경쟁력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안전조직을 대표이사 직속으로 두고, 별도의 안전 예산을 편성하며, 안전 성과를 경영평가에 반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안전은 규제를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가 아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변화는 기술에서도 나타난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은 안전관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AI 영상분석을 활용한 위험행동 감지, IoT 센서를 통한 실시간 모니터링, 드론을 활용한 현장 점검, 디지털 플랫폼 기반 안전문서 관리 등은 현장에 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단순히 업무를 효율화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이 예방활동을 수행했다는 객관적인 증빙 수단이다.
특히 안전관리의 핵심이 '증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안전교육을 했다는 사실보다 실제 교육이 이뤄졌다는 기록이 중요하다. 점검을 했다는 주장보다 위험 요인을 개선했다는 데이터가 중요해지고 있다. AI와 디지털 플랫폼은 이러한 예방활동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입증하는 기반이다.
여전히 해결할 과제도 쌓여 있다. 중소기업은 투자 여력이 부족하고, 전문 안전인력 확보도 쉽지 않다. 기술사고와 안전사고를 바라보는 제도적 한계 역시 남아 있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기업 경쟁력은 얼마나 빨리 사고를 수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체계적으로 사고를 예방했느냐에서 결정된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다. 투자이며 경쟁력이고 지속가능성이다. 사고 이후의 대응 능력보다 사고 이전의 예방체계를 얼마나 충실히 구축했는지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가 왔다.
예방은 현실적인 경영 전략이며, AI와 디지털 기술은 그 전략을 실행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