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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나루의 아침] 벤츠를 겨눈 공정위 칼끝, 진짜 본질은 ‘화재’보다 ‘투명성’

기계적 결함을 단정한 제재 아냐… 전기차 시대, 소비자가 알아야 할 핵심 정보는 더 솔직해야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메르세데스-벤츠를 향한 공정거래위원회의 112억 원대 과징금과 검찰 고발은 자극적인 숫자만 놓고 보면 거대한 ‘화재 책임 추궁’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안을 조금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핵심은 화재가 아니라 정보, 더 정확히는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정보를 얼마나 정직하게 공개했느냐는 점이다. 공정위는 벤츠가 EQE·EQS 일부 모델의 배터리 공급사 정보를 누락·은폐해 소비자를 오인하게 했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계에 의한 부당한 고객유인’으로 봤다. 문제가 된 차량은 2023년 6월부터 2024년 8월 사이 약 3000대 판매됐고, 관련 매출은 약 2810억 원으로 집계됐다. 과징금은 법정 최대 수준인 관련 매출의 4%가 적용됐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은, 이번 제재가 “벤츠 전기차는 기계적으로 위험하다”거나 “배터리 자체의 결함이 공식 확인됐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공정위 판단의 초점은 안전성의 공학적 결론이 아니라 판매 과정에서 어떤 정보가 전달됐고 어떤 정보가 빠졌는지에 맞춰져 있다. 다시 말해 이번 조치는 ‘차가 기계적으로 문제 있는가’에 대한 최종 판정이라기보다 ‘소비자가 알고 샀어야 할 정보를 제대로 알렸는가’에 대한 규제 판단에 가깝다. 그래서 이 사건은 화재 사고를 둘러싼 기술 논쟁과는 별개로 읽을 필요가 있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전기차에서 배터리는 내연기관 차의 엔진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민감한 핵심 부품이다. 주행거리와 충전속도뿐만 아니라 안전성에 대한 심리적 신뢰와도 직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배터리 업체의 기술력은 강조하면서 실제 일부 차량에는 다른 공급사의 배터리가 들어갔다는 사실이 제대로 고지되지 않았다면, 소비자는 자신이 무엇을 샀는지 정확히 알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공정위가 이번 사안을 단순 표시 실수나 영업 현장의 혼선이 아니라 소비자 오인 가능성이 큰 행위로 본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일이 벤츠 한 브랜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 시대 자동차의 정체성은 차체나 엠블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배터리 셀을 쓰는지, 어떤 공급망을 거치는지, 어떤 소프트웨어와 관리체계를 얹는지가 상품의 본질을 좌우한다. 그런데도 완성차업계는 여전히 배터리 공급망 정보를 ‘굳이 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처럼 다뤄온 측면이 있다. 이번 공정위 제재는 바로 그 오래된 관행에 제동을 건 사건으로 읽힌다. 이제 소비자는 단지 “벤츠냐 아니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 벤츠 안에 무엇이 들어있느냐”를 묻기 시작했다.
벤츠 입장에서는 억울함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회사는 공정위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 말은 곧 법정에서는 정보 전달의 범위와 책임 소재, 소비자 오인 정도를 두고 치열한 다툼이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최종 법적 판단은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법적 공방과 별개로 소비자 신뢰라는 측면에서는 이미 뼈아픈 질문이 던져졌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프리미엄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단지 좋은 차를 만들기 때문만이 아니다. 좋은 차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할 줄 알기 때문이다. 벤츠는 공정위 결정에 불복하겠다고 밝혔지만 공정위가 문제 삼은 사실관계와 조치 내용 자체는 분명하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전기차 전체에 대한 막연한 불안의 확산이 아니다. 특정 사고 하나를 근거로 모든 전기차를 위험하다고 몰아가는 것도, 반대로 브랜드의 권위만 믿고 공급망 정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도 모두 옳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둘러싼 공포가 아니라 정보에 대한 신뢰다. 기계는 때로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기업의 침묵은 오해를 키운다. 이번 벤츠 사태가 남길 가장 큰 교훈도 거기에 있다. 전기차 시대의 경쟁력은 배터리 성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얼마나 투명하게 말하느냐가 이제는 브랜드의 품격을 결정한다.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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