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
이미지 확대보기과거 검색의 시대에는 누가 더 많은 정보를 빨리 찾아내느냐가 실력이었다. 하지만 지능이 자동화된 지금, 단순한 정보 습득은 더는 차별화된 능력이 아니다. 이제 진짜 실력은 주어진 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맞는 답을 뽑아내기 위해 AI에게 어떤 방향으로 질문을 던질지 결정하는 힘에서 나온다.
이러한 지적 패러다임의 변화는 국제 교육정책의 흐름에서도 확인된다. 유네스코(UNESCO)가 2024년에 발표한 '학생을 위한 AI 역량 프레임워크(AI Competency Framework for Students)'는 AI 시대에 학습자가 갖춰야 할 세부 역량으로 AI가 제시하는 결과를 검토·의심하고 설명을 요구하는 태도나, 문제를 재정의하고 사회적·윤리적 영향을 따져 묻는 능력 등을 강조한다. 단순히 AI 도구를 조작하는 기능을 넘어 AI가 내놓은 결과물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보완할 '전략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미래 시민의 핵심 소양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생태학의 거장 마셜 매클루언은 저서 《미디어의 이해(1964)》를 통해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그 후에는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는 기념비적인 통찰을 남겼다. 그의 예견처럼 생성형 AI라는 새로운 도구는 이제 인간의 인지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과거의 교육이 주어진 정답을 성실히 추종하는 인간을 길러냈다면, AI 시대는 최적의 답을 유도해내는 ‘질문 설계자’의 역량을 강력히 요구한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맞히는 숙련도가 아니라 AI라는 거대한 지능을 목적에 맞게 설계하고 부리는 능력이다.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아이만의 고유한 주도권을 길러주려면 가정에서부터 질문의 결을 바꾸는 일상적인 훈련이 선행돼야 한다. 거창한 교육 담론에 매몰되기보다 학계에서 검증된 실천적 기법들을 부모와의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사고는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첫째, 교육 현장에서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널리 활용하는 ‘질문 형성 기법(QFT·Question Formulation Technique)’이다. 이는 아이가 던진 단순한 질문을 목적에 맞게 가공하고 수정해 보는 훈련이다. 예를 들면, 아이가 "사과는 왜 빨개?"라는 폐쇄적 질문을 던졌을 때, 이를 "사과의 색깔이 동물의 시각 체계와 종족 번식에 어떤 영향을 줄까?"라는 열린 질문으로 변환해 보게 함으로써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다. 아이는 이 과정을 통해 질문의 형태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정보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짐을 몸소 체득하게 된다.
둘째,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현대화한 ‘비판적 질문법(Critical Questioning)’이다. AI가 내놓은 매끄러운 답변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그 논리적 허점을 찾아내는 질문법이다. "이 답변의 전제는 무엇일까?", "반대되는 증거는 없을까?"와 같이 정보의 이면을 파고드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결과물에 대한 맹목적 수용을 막는다. 이는 아이를 정보의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로 성장시키는 핵심 동력이 된다.
셋째,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 분야에서 활용하는 ‘How Might We(우리가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기법이다. 이는 막연하고 거대한 문제를 AI가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창의적인 단위로 쪼개는 설계기술이다. "환경오염을 해결해줘"라는 모호한 요청 대신,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학교급식 잔반을 즐겁게 줄이면서 탄소배출량을 낮출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재정의해 AI로부터 실질적인 대안을 이끌어낸다.
AI 시대, 우리 아이에게 물려줄 가장 위대한 유산은 백과사전적 지식이 아니라 AI라는 거대한 엔진을 지휘할 ‘질문의 나침반’이다. 정답을 복사해 붙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과거의 안일함은, 애석하게도 지능이 자동화된 새로운 계급 시대에 아이를 무력하게 만들 뿐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질문의 격(格)을 고민하며 생각의 능력을 키워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에 압도당해 길을 잃는 수동적 사용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질문이라는 열쇠로 AI의 무한한 가능성을 여는 주체적 설계자가 될 것인가. 이 냉혹한 변화의 기로에서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사유의 길’을 열어주는 것만이 우리 부모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