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걸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간송옛집’이었다. 평소에도 시간이 나면 자주 찾는 곳이긴 하지만 눈에 덮인 모습은 자주 볼 수 없는 귀한 풍경이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다소곳이 눈을 이고 섰던 고향의 초가지붕과 달리 지붕 가득 눈을 이고서도 처마 끝을 한껏 추켜올린 기와지붕의 당당함이 배경의 노송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아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눈은 솟을대문 지붕 위에도, 담장 위에도 소복이 쌓여 카메라 프레임 속에 넣으면 그대로 한 장의 그림엽서가 되었다.
간송옛집을 일별하고 집으로 오는 대신 산길로 들어섰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숫눈을 밟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북한산 둘레길의 한 자락인 숲길로 들어섰을 때 이미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떠오르는 시 한 수는 조선 시대 관리이자 시인이었던 임연재 이양연의 ‘야설(野雪)’이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걷는 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사람 이정표가 될 것이다.” 김구 선생이 안중근 의사 의거 39주년을 기리며 친필로 휘호하고 애송하면서부터 알려지고 유명해진 시다.
갈림길에서 정의공주묘 쪽으로 길을 잡으며 잠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음에도 발자국이 어지럽다. 황지우 시인은 ‘눈보라’라는 시에서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같은 길을 걸어도 찍히는 발자국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크게 길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조금은 어긋났다 해도 그리 나무랄 일은 아니다. 소나무 가지에 쌓인 눈도 보고, 갈참나무 줄기를 타고 오르는 청설모와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나는 까마귀의 날갯짓을 보다 보면 조금씩 어긋나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감사는 천국, 비교는 지옥’이란 말이 있다.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탓하기보다 자신이 걸어온 길에 만족하고 무탈함에 감사할 수 있다면 결코 부끄러울 게 없는 당당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걷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매일 걷던 길이라 해도 쌓인 눈에 가려져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긴장을 늦추거나 한눈을 팔면 미끄러지거나 넘어져 다치기 쉽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말처럼 눈길에서는 끝까지 무탈하게 걸어온 자가 똑바로 걷는 자보다 한 수 위라 할 수 있다. 무사히 둘레길을 빠져나와 집으로 오는데 다시 눈발이 흩날린다. 나는 습관처럼 문정희 시인의 시 ‘겨울 사랑’을 입속에 넣고 웅얼거렸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뜻한 겨울이 되고 싶다./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