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워도 시간의 강물은 유유히 흘러간다. 땅거미가 지기도 전에 하나, 둘 불을 밝히는 성탄 트리를 보면 무정하게 흐르는 시간의 물결에 떠밀려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옷깃을 파고드는 찬 바람을 피해 잔뜩 움츠리고 종종걸음을 치다가 새빨간 열매를 가득 달고 서 있는 산수유나무를 보았다. 여름내 무성하던 초록 잎에 가려져 있다가 찬 바람에 잎이 진 뒤에야 붉은 열매가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이른 봄날, 샛노란 안개를 피워 올리듯 노란 꽃송이를 달고 제일 먼저 봄을 알려주던 나무인데 꽃 진 뒤 까맣게 잊고 살다가 이 겨울 들머리에 다시 열매로 만나다니….
산수유 열매는 정신을 맑게 하고 각종 성인병과 부인병은 물론 두통, 이명, 야뇨증에도 효능이 탁월하다고 ‘동의보감’에도 적혀 있을 만큼 한약재로 인기가 높다. 산수유의 사포닌 성분은 면역력을 강화해주고 피로 해소와 자양 강장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산수유의 풍부한 비타민A는 시력을 보호해주고 눈의 피로감을 해소해주며 눈을 맑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수유는 떫은맛과 신맛이 강해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약재는 아니다. 진하게 달여 먹기보다는 차처럼 은은하게 장복하거나, 설탕을 약간 넣어서 쓰는 것도 무방하다. 신선하고 빛깔이 붉고 촉촉한 것일수록 좋은 산수유이며, 떫고 신맛이 강할수록 효능이 더욱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두운 방 안엔 / 바알간 숯불이 피고, /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 이윽고 눈 속을 /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김종길의 시 ‘성탄제’ 일부)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지고 성탄 트리가 반짝이는 성탄 시즌, 붉은 열매를 달고 선 산수유나무를 볼 때면 나는 습관처럼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를 떠올리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극했던 사랑을 떠올리곤 한다.
이 시를 처음 읽었던 학창 시절만 해도 나는 산수유를 알지도 못했고, 산수유의 노란 꽃이나 붉은 열매 또한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가만가만 소리 내어 시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리스도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것처럼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내가 몸살이라도 나서 앓아누우면 아버지는 한밤중에도 눈길을 헤치고 십 리나 되는 읍내 약국까지 가서 약을 구해 오셨다. 어렵게 구해 오신 약봉지를 어머니에게 건네고 십 리 눈길을 걸어오시느라 꽁꽁 언 손을 가만히 이마에 얹어주시던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이 있어 내 어린 시절의 겨울은 늘 따뜻했던 것 같다.
묵묵히 시간의 눈금을 헤아리며 때를 잊지 않고 봄엔 나무 가득 노란 안개를 쓴 듯 자잘한 노란 꽃들을 피워 달고, 가을엔 꽃 피웠던 자리마다 일제히 불을 켜듯 붉은 열매를 내어 단 산수유나무를 보면 이룬 것도 없이 시간만 허비했을 뿐 한 해의 끝자락까지 떠밀려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산수유의 붉은 열매는 약재로도 훌륭하지만, 먹이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새들에게는 훌륭한 겨울 양식이 되기도 한다. 산수유 열매가 붉은 이유는 새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서다. 먹이가 되어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찾기 쉽도록 빨갛게 불을 켜고 안내까지 해주니 배려심도 깊다. 산수유 열매만큼 붉은 열매가 있으니 바로 ‘사랑의 열매’다. 빨간 열매 세 개는 나, 가족, 이웃을 뜻한다. 북풍이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 가족과 이웃에게 온기를 나누는 따뜻한 겨울이었으면 싶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