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년 만의 ‘11월의 폭설’로 북한산이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흰 눈에 덮여 한 폭의 설경 산수화로 변신한 북한산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친견하고픈 욕심에 아침 일찍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지난겨울, 장비도 없이 나섰다가 고생을 했던 터라 아이젠과 등산 스틱까지 꼼꼼히 챙겼다. 눈을 보고픈 마음이 나뿐만은 아니어서 등산로엔 제설제도 뿌려져 있고, 많은 사람이 오르내린 탓인지 눈도 다져져서 걸음을 옮기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다. 정작 어려운 것은 등산로 곳곳에 폭설로 부러진 나뭇가지와 쓰러진 나무둥치가 등산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에 내린 폭설은 내린 양도 많았지만, 눈이 물기를 많이 머금은 습설(濕雪)이라서 나무들 피해가 유난히 컸다. 구름층의 기상에 따라 다양한 눈이 만들어지는데 상공 1.5㎞ 기온이 영하 10~20도로 비교적 높을 때 함박눈이 되어 내린다고 한다. 이 함박눈이 다름 아닌 습설이다. 잘 뭉쳐져서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 놀이하기엔 좋으나, 많이 내릴 경우 나무에게는 치명적이다. 습설은 건조한 눈에 비해 그 무게가 3배나 더 무겁기 때문이다. 특히 속이 무른 침엽수의 경우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지가 찢겨 나가기도 하고, 나무둥치가 통째로 쓰러져 버리기도 한다.
대체로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는 단단하고,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는 무르다. 그래서인지 산을 오르며 발견된, 설해 입은 나무 대부분이 소나무다. 참나무류의 활엽수들은 낙엽이 진 뒤라 눈이 가지에 쌓여도 그 양이 많지 않아 견딜 만하다. 그러나 사철 푸른 잎을 달고 사는 소나무는 쌓이는 눈의 양도 많고 나무도 물러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지가 찢기거나 부러지고 마는 것이다. 일찍이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하며 소나무를 칭송하기도 했다. 낙엽 진 활엽수들 사이에서 사철 푸른 잎으로 독야청청한 소나무는 단연 아름답다. 하지만 그 푸른 빛을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생살 찢기는 고통도 감내해야만 한다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 온다.
“산에서 살아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인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 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서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에 들어 있는 ‘설해목’의 일부다. 겨울 경치의 으뜸은 산비탈에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라는 말도 있지만 소나무에게 겨울은 견디기 힘든 시련의 계절이다.
눈송이 하나는 입김보다 가볍다. 그 가벼움도 쌓이면 폭설이 되고, 감당하기 힘든 폭설의 무게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쓰러지기도 한다. 도선사를 내려오는데 크레인까지 동원해 도로 위로 쓰러진 소나무 가지를 정리하는 인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쓰러진 소나무를 보며 생각한다.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추켜세워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게 인간이다. 에픽테토스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계속 그것을 전가한다”고 했다. 정호승 시인은 ‘설해목’이란 시에서 ‘내가 폭설을 너무 힘껏 껴안아/ 내 팔이 뚝뚝 부러졌을 뿐/ 부러져도 그대로 아름다울 뿐/ 아직/ 단 한 번도 폭설에게/ 상처받은 적 없다’고 했다. 땅을 치고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소나무처럼 이 추운 계절을 잘 견뎌야겠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