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격변의 21개월" 분석…전문가들 "행정명령 많지만 지속성 불확실"
관세·이민 단속·이란 전쟁까지 행정권 전면 행사…미국 통치 관행 흔들어
관세·이민 단속·이란 전쟁까지 행정권 전면 행사…미국 통치 관행 흔들어
이미지 확대보기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 이후 21개월 동안 관세 부과와 강경 이민 단속, 해외 군사작전 등을 잇달아 추진하면서 미국 대통령의 권한 행사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광범위한 행정명령을 발동하고 기존 정치·행정 관행을 뒤흔드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의 속도와 규모에 비해 의회를 통과한 주요 입법 성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제기됐다.
특히 이란 전쟁 장기화와 에너지 가격 상승이 미국인들의 생활비 부담을 키우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가 중간선거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중간선거가 실시된 3일(이하 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첫 21개월을 돌아보면서 기존 대통령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행정권의 한계를 그가 시험한 것으로 평가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는 진영과 반대하는 진영 사이에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지만 그의 국정운영이 미국의 정치제도와 대외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취임 첫날부터 행정명령 공세…관세·이민정책 전면 개편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는 2025년 1월 취임 직후부터 기존 정책을 뒤집는 조치들이 잇따르면서 시작됐다.
그는 취임 첫날 2021년 1월 6일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사건 관련자들을 사면하고 다수의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여기에는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규정된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려는 조치도 포함됐다.
취임 이후 몇 주 사이에는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린란드에 대한 영유권 확보 의사를 드러냈다.
2025년 2월에는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이주시킨 뒤 이 지역을 중동의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론 머스크를 기용해 연방정부 조직과 인력을 대폭 축소하는 작업에도 나섰다.
미국의 주요 해외 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를 해체하는 조치가 추진됐으며 불법체류자로 지목된 수백 명을 엘살바도르의 최고 보안등급 교도소로 추방하면서 적법절차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벌어졌다.
백악관에서는 JD 밴스 부통령과 함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질책하면서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관계 악화가 국제사회에 드러나기도 했다.
이어 4월에는 이른바 '해방의 날'을 선언하고 거의 모든 주요 교역상대국을 대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FT는“ 이 조치가 수십 년 동안 유지돼 온 국제무역 체제를 흔들었으며 미국 국채시장의 급격한 매도세까지 촉발했다”고 전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금융계 인사들도 당시 시장 혼란에 우려를 나타냈다.
◇대통령 권한 어디까지…대학·로펌·언론사까지 압박
FT는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정책 결정에서 나타난 공통된 특징으로 행정부 권한을 최대한 확대하려는 시도를 꼽았다.
대통령이 기존 관행이나 제도적 견제를 넘어 어디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다는 것이다.
줄리언 젤라이저 미국 프린스턴대 정치사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을 전례 없이 광범위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극도로 확장된 이해"가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 첫 2년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주요 법률사무소와 명문대학, 대형 언론사에도 압박을 가했다.
이같은 조치들은 기존 제도를 흔들려는 백악관의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됐다.
그러나 행정부의 권한 행사를 둘러싸고 법적 다툼도 잇따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법학전문대학원장인 어윈 체머린스키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헌법과 법률을 이처럼 존중하지 않는 대통령은 이전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기존 정치체제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평가한다.
이들은 멕시코와의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불법체류자 추방을 확대했으며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을 폐기한 점을 주요 성과로 꼽고 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행정부의 권한 확대를 둘러싼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주방위군 투입…미국 도시까지 군 병력 배치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이민정책은 미국 내 주요 도시에서도 갈등을 불러왔다.
2025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에 수천 명의 주방위군 병력을 투입하도록 명령했다.
이후 워싱턴DC와 포틀랜드, 시카고, 멤피스 등에서도 군 병력 배치가 이어졌다.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미국 전역에서 불법체류자를 단속하고 추방하는 과정에서 항의 시위도 확산됐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반란에 대응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주방위군과 해병대까지 투입했다.
이민 단속에 대한 반발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도 확대됐다.
연방 요원들의 총격으로 미국 시민인 러네이 굿과 알렉스 프레티가 숨지면서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젤라이저 교수는 “통상적인 대통령 임기였다면 미네소타의 연방 법 집행기관 활동이나 주요 도시의 주방위군 배치만으로도 중간선거의 핵심 쟁점이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일부 사건의 정치적 파장이 다른 사건에 가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FT는 2025년 로스앤젤레스에 군 병력이 투입됐을 당시만 해도 이 사건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를 상징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후 더 큰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이어 이란 전쟁…중동 전략도 시험대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들어 해외 군사작전도 확대했다.
2025년에는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했으며 카리브해와 동태평양에서 마약 밀매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들을 대상으로 군사공격을 시작했다.
2026년 1월에는 미국 특수부대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당시 대통령을 체포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마두로는 체포된 뒤 미국 뉴욕으로 이송돼 브루클린의 구금시설에 수감됐다.
그러나 FT가 집권 2기의 가장 중대한 군사적 도전으로 꼽은 것은 이란 전쟁이다.
올해 2월 시작된 이란 전쟁은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FT는 미국이 이란의 정권 교체와 핵 프로그램 제거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란에는 이전보다 강경한 정부가 들어섰으며 핵 프로그램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력을 미국과 중동 동맹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란 전쟁은 미국 내 에너지 가격을 급등시키고 생활비 부담을 키웠다.
이는 해외 군사개입을 줄이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약속과도 충돌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FT는 끝없는 해외 전쟁을 종식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을 지지했던 핵심 지지층에도 이란 전쟁이 부담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MAGA 핵심 지지층도 침묵…이란 전쟁에 실망감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마가) 운동 내부에서도 이란 전쟁에 대한 반응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의 사회학자 알리 러셀 혹실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었던 지역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연구한 켄터키주 제5연방하원 선거구는 최근 세 차례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약 80%의 지지를 보낸 지역이다.
혹실드는 이 지역 주민들이 과거에는 상실감과 불만을 정치적으로 강하게 표출했지만 최근에는 침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현재 상황에 실망하거나 혼란스러워하면서 외부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로 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부 핵심 지지층에서도 이란 전쟁과 생활비 상승을 둘러싼 복잡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FT는 이같은 변화가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철회나 민주당 지지로 이어졌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혹실드는 반트럼프 성향 유권자들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다시 정치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았던 미국인들이 재집권 초기에는 잇따른 정책 변화에 충격과 혼란을 겪었지만 이제는 상당 부분 이를 극복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어 이들이 중간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감세법은 주요 입법 성과…행정명령의 지속성에는 의문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7월 대규모 감세·지출 법안인 이른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을 주요 입법 성과로 내세웠다.
이 법안에는 2017년 감세 조치의 영구화와 복지 지출 대폭 삭감, 이민 단속과 국방 분야에 대한 수십억달러 규모의 예산 배정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 변화의 규모에 비해 의회를 통해 확정한 입법 성과는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대니얼 슐로즈먼 미국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실제 입법 성과가 과거 대통령들과 비교해 매우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동한 수많은 행정명령의 효과도 처음에 나타난 모습보다 오래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명령을 통해 추진한 정책들은 의회를 통과한 법률과 달리 향후 정치적·법적 상황에 따라 변경되거나 폐기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슐로즈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 단속 과정에서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법무부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다”면서 “의회의 역할을 약화시킨 점이 향후 주요 평가 대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란 전쟁 개시 결정 과정에서 의회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책이나 외교적 성과보다 백악관과 워싱턴의 물리적 모습을 바꾸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첫해 백악관 동관을 철거하고 대규모 연회장 건설을 추진했다.
FT는 이같은 건설사업도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제도와 관행을 바꾸려는 국정운영 방식의 한 사례로 소개했다.
중간선거를 맞은 미국 유권자들은 이란 전쟁과 생활비 부담뿐 아니라 지난 21개월 동안 이어진 대통령 권한 확대와 정치제도의 변화도 함께 평가하게 됐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이 단기간에 미국의 정책과 제도를 크게 바꿨지만 이같은 변화 가운데 무엇이 장기적인 유산으로 남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