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 퇴출 규제 추가 완화·유럽산 보조금 우대 맞교환…영국·일본 반발 가능성
이미지 확대보기유로존을 주도하는 경제대국인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연합(EU)의 내연기관차 퇴출 규제를 추가로 완화하는 대신 유럽에서 생산한 자동차와 배터리에 공공 지원을 집중하는 포괄적인 합의에 접근했다.
오는 2035년 이후에도 내연기관차가 신차 판매의 10%를 차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이 협상에 포함돼 유럽 자동차산업의 전기차 전환 정책이 다시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현지시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모터쇼에서 독일과의 자동차산업 정책 합의가 임박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 산업을 더 잘 보호하면서 탈탄소화 목표를 유지하고 경쟁력과 주권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독일 측과 합의를 마무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수시간 안에, 늦어도 며칠 안에는 합의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양국은 지난여름부터 내연기관차 퇴출 규제와 유럽산 제품 우대 정책을 묶은 절충안을 논의해 왔다.
독일은 자동차업체의 배출가스 규제를 완화해 내연기관차 판매를 더 오래 허용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EU 역내에서 생산한 자동차와 부품, 배터리에 공공조달 계약과 보조금을 우선 배정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 2035년 이후 내연기관차 10% 허용…저탄소 연료 조건도 완화
협상 내용을 아는 관계자 2명에 따르면 독일은 2035년 이후에도 내연기관차가 전체 신차 판매의 10%를 차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들 차량에 저탄소 연료나 소재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하지 않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내연기관 기술을 계속 활용할 수 있도록 자동차업체에 더 큰 재량을 부여하는 조치다.
독일은 이와 함께 자동차업체에 적용되는 2030년 배출가스 감축 목표도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협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2030년 규제 완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합의가 EU의 탈탄소화 목표에 보다 실용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FT는 이 같은 합의가 성사되면 EU의 기존 기후정책 목표가 추가로 완화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 프랑스, '유럽산 우대' 확보 추진…영국·일본 자동차업계 변수
프랑스가 독일의 규제 완화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는 조건은 유럽산 자동차와 관련 기술에 대한 공공 지원 확대다.
협상안에 따르면 전기차와 배터리 등 주요 자동차 기술 분야에서 EU가 제공하는 보조금과 공공조달 계약은 역내 제조업체에 상당 부분 집중될 전망이다.
이른바 '메이드 인 유럽(Made in Europe)' 정책을 통해 유럽 자동차산업의 생산 기반을 보호하고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영국과 일본 등 주요 교역 상대국과 새로운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EU 밖에서 생산한 자동차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에서 생산한 자동차가 유럽의 공공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협상 관계자 중 한 명은 영국산 자동차에 대한 적용 조건이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럽 자동차업계 내부에서도 역외 생산시설의 예외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르노와 미국 포드 등 일부 자동차업체는 튀르키예처럼 EU 회원국이 아닌 곳에서도 유럽산 부품을 높은 비율로 사용해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유럽산 우대 규정에 특정 제3국에 대한 예외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 르노·폭스바겐 조속한 합의 촉구…중국산 하이브리드 수입 제한도 추진
유럽 자동차업계는 프랑스와 독일의 조속한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주 안에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 주요 자동차업체 경영진은 파리모터쇼 개막을 앞둔 11일 밤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자동차산업의 위기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프로보 CEO는 프랑스에서만 약 100만개의 일자리가 자동차산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대응을 더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업체들이 단순히 불평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EU의 요구에 따라 전기차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CEO를 비롯한 유럽 자동차업계 경영진도 중국 경쟁업체들의 위협에 대응하려면 프랑스와 독일이 신속하게 합의해야 한다고 촉구해 왔다.
이번 협상은 EU가 중국산 하이브리드차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추진하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2024년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 이후 상대적으로 관세 부담이 적은 하이브리드차의 유럽 수출을 크게 늘렸다.
EU는 높은 관세가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전에 중국산 하이브리드차 수입에 할당량을 설정할 방침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의 불공정 경쟁으로부터 유럽 자동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과 이번 프랑스·독일 합의가 유럽 자동차업체들이 정당하게 기대하는 대응책이라고 강조했다.
◇ 최종 시행까지 EU 회원국·유럽의회 승인 필요
프랑스와 독일이 합의하더라도 관련 정책이 곧바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EU 자동차 규제 개정과 유럽산 우대 정책은 다른 회원국들과 유럽의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보프커 훅스트라 EU 기후 담당 집행위원은 프랑스·독일의 자동차 정책 합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두 회원국의 합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다른 회원국과 유럽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브뤼셀에서는 자동차산업 보호를 위한 여러 법안이 협상 중이지만 규제 완화와 역내 생산 우대 정책을 둘러싼 의견 차이로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
한 EU 관계자는 관련 법안의 협상을 진전시키려면 전체 정책을 포괄하는 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FT는 프랑스와 독일의 절충안이 EU 자동차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인 동시에 유럽의 기후정책을 추가로 완화하고 영국·일본 등 교역 상대국과의 마찰을 불러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